2024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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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 이전 로마네스크풍으로 세워진 새롭고 혁신적인 건축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33. 두 ‘프리로마네스크’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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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북부 오비에도의 산타 마리아 델 나랑코 성당 내부.   출처= prerromanicoasturias.es

 


스페인 산타 마리아 델 나랑코 성당

로마네스크 성당은 큰 탑이 솟아 있고, 두꺼운 벽에 창문은 작은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외관은 단순 명확한데, 내부는 두툼한 기둥으로 받쳐진 아케이드 위에 볼트(vault)가 덮여 있었다. 그런데 로마네스크의 눈으로 보면 예스럽고 소박하게 보이지만, 이전의 건물과 달리 큰 도약을 보여준 새롭고 혁신적인 건물이 있었다. ‘로마네스크 이전’이라 하여 이를 ‘프리로마네스크(pre-Romanesque)’라 부른다. 이것은 후에 클뤼니 수도원의 영향을 받기 전인 10세기에 이탈리아 북부, 프랑스 일부, 이베리아반도에서 발전했다.

이런 ‘프리로마네스크’ 건축으로 매우 잘 보존된 보석과 같은 건물이 스페인 북부 아스투리아스(Asturias)의 아름다운 수도 오비에도(Oviedo)에서 불과 4㎞ 떨어진 언덕 기슭에 있다. 산타 마리아 델 나랑코(Santa Mara del Naranco)라는 성당인데, 842년과 848년 사이에 지어졌다. 작지만 웅장하고 힘차면서 단아한 석조 건물이다.(외관 사진은 ‘31. 로마네스크 성당의 배경’ 참조) 기단 위에 창이 세 개뿐인 견고한 1층 위에 개방된 삼련(三連) 아치가 있는 로지아(loggia, 벽이 없는 복도 모양의 방)가 건물을 경쾌하게 만든다. 옆에는 측면 중앙에서 출입하는 계단을 둔 전실이 붙어 있다. 크기는 20m×6m×11m로 눈에 띄게 좁고 높다.

이 건물은 본래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이었던 라미로 1세가 외곽 지역에 리셉션 등을 위해 세운 왕궁의 홀이었다. 건물의 양 끝에는 전망용 발코니인 미라도르(mirador)가 있다. 측면은 버팀벽이 수직 홈을 판 기둥 모양을 하고 있어 로마네스크 성당의 벽과 많이 닮았다. 내부의 좌우 벽은 아케이드지만, 6개는 벽으로 막힌 반원형 아치다. 원통 볼트는 투파스톤(tufa stone)으로 만들어졌는데, 벽에서 내 쌓은 돌에서 시작하는 횡단 아치로 보강되어 있다. 후기 로마 건축의 방식 그대로다. 안팎에는 밧줄을 나선형으로 감은 몰딩이 기둥 위에 새겨져 있다.

이런 건물이 성당으로 사용되었다. 이 성당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150년이지만, 궁전 건물로 지어진 후 얼마 안 되어 성모께 봉헌한 성당이 되었던 것 같다. 성당으로 사용하던 오랜 사진을 보면 안과 밖의 삼련(三連) 아치가 있는 로지아에는 제대를 두었고, 외부는 문으로 막았다. 왼쪽 벽 출입구 옆에는 강론대와 성수대가 보인다. 벽체와 원통 볼트는 희게 마감했다. 그야말로 ‘랑(廊)’이 하나인 단랑(單廊)의 로마네스크 성당의 모습이 고스란히 그 안에 들어 있다.
 

 

힐데스하임의 성 미카엘 성당 내부(동쪽 제단을 바라봄).   출처=Wikimedia Commons


독일 힐데스하임에 있는 성 미카엘 성당

그러면 이런 ‘프리로마네스크’는 어떻게 ‘로마네스크’ 성당으로 발전하게 되었을까? 건축사가 니콜라우스 페브스너(Nikolaus Pevsner)가 “진정한 로마네스크 외관이 가장 오래 남아 있는 사례”라고 말한 성당이 있다. 힐데스하임에 있는 성 미카엘 성당(Michaeliskirche, Hildesheim)이다. 이 성당은 힐데스하임의 주교 베른바르트가 1010년에 착공하고 1022년에 미완성인 건물을 봉헌했으나, 완공된 것은 1031년이었다. 시기적으로는 가장 늦은 ‘프리로마네스크’ 성당이지만 로마네스크 성당에 가장 가까운 성당이며, 독일 로마네스크 성당의 초기 양상을 잘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성당의 하나다.

로마네스크 성당의 외관은 모두 잘 알고 있을 정도로 익숙하다. 사면체, 원기둥 등 기하학적인 형태가 단순하게 조합되어 있다. 중심에는 높고 커다란 부분이 있고, 이보다 낮고 작은 부분이 차례로 더해진다. 전체는 가산적(可算的) 구성이다. 이런 구성 방식은 전체를 나누어가는 고딕 성당과는 반대다. 이렇게 하여 내부 공간에는 차별화된 새로운 형태가 생기고, 외부에는 매우 다양한 구조물이 땅에 뿌리를 내린 듯이 묵직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었다.

이 성 미카엘 성당 외관은 이런 로마네스크의 입체 구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동쪽과 서쪽 교차부 위에는 두 개의 큰 탑을, 동과 서의 수랑 끝에는 네 개의 탑 등 모두 6개의 탑을 세웠다. 큰 탑 밑으로는 수랑(袖廊)과 반원 제단의 입체 등이 차례로 낮게 덧붙여져 있다.

로마네스크 성당의 가장 큰 발명은 성당의 동쪽 끝의 제단 부분을 새롭게 배열한 것이었다. 첫째, 원형 제단 앞 교차부에 성가대석(choir, 또는 성단소 chancel)이 놓여 중랑 쪽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둘째, 원형 제단을 감싸며 사람의 이동을 받아들이는 주보랑이 놓였다. 셋째, 산 비탈레 대성전처럼 전례에 필요한 분리된 방을 원형 제단 좌우에 두었다. 그렇게 되면 이 두 방은 좌우 측랑 열의 끝에 놓이게 되어 회중석이 3랑인 평면이 된다. 이것이 외부의 높은 탑과 함께 바실리카식 성당에 ‘로마네스크’라는 이름이 붙게 되는 요인이다.

평면을 보자. 동쪽 끝 반원 제단(도면의 오른쪽)과 서쪽 제단 앞에는 각각 횡랑이 지나가며 교차부(crossing)를 만든다. 이 교차부에는 성가대석이 놓였다. 그래서 이 성당에는 성가대석이 두 개 있다. 서쪽 끝 지하 경당에는 베른바르트 주교의 유해를 안치했는데, 정교한 교차 볼트로 덮인 홀에 주보랑을 두었으며, 그 위의 원형 제단 위로 거대한 높이의 공간이 솟아 있다.

 

힐데스하임의 성 미카엘 성당 평면.   출처=Wikimedia Commons

 

힐데스하임의 성 미카엘 성당 외관.   출처=Wikimedia Commons


독일 로마네스크 성당 건축에도 큰 영향

동쪽의 반원 제단 좌우에는 두 개의 반원형의 공간을 따로 더 두었다. 동쪽과 서쪽의 횡랑은 교차부와 두 수랑 등 세 부분으로 나뉜다. 그 결과 회중석은 대(大) 아케이드로 세 개의 ‘랑(廊)’으로 나뉘었다. 대(大) 아케이드는 사각형의 피어 사이에 두 개의 원기둥이라는 형식을 반복하고 있다. 정사각형의 피어를 a, 원기둥을 b라고 하면 ‘a b b a b b a b b a’라는 리듬을 갖는다.

정사각형 교차부에는 폭과 높이가 같은 네 개의 아치를 붉은 돌과 밝은 돌이 번갈아 쌓아 그 경계가 분명하다. 그러나 중랑, 수랑, 제단 등 네 방향으로 열려 있으며, 구조적으로 안정되어 상부에 높은 탑을 세울 수 있다. 이를 분리형 교차부라 부르는데, 이 성당은 이런 분리형 교차부를 최초로 보여주었다. 이 교차부의 정사각형은 회중석, 남북의 수랑에서 반복되어 성당의 주요부가 교차부의 정사각형을 기본으로 지어졌다. 이는 독일 로마네스크 성당 건축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나아가 중앙 유럽의 로마네스크 건축에서도 일반적인 방식이 되었다.

다만 이 성당에는 로마네스크의 큰 특징인 수직적 강조가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아케이드 위는 고창이 있을 뿐 하얀 벽면이 넓게 확장되어 있어서, 아케이드, 흰 벽, 고창이라는 수평 띠만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더구나 천장도 편평한데, 독일에서 유일한 평평한 성당 천장이다. 천장에는 매우 축약된 예수님의 족보가 그려져 있다. 13세기에 그려진 이 그림은 성 미카엘 성당의 가장 중요한 예술 작품이기도 하다.

성 미카엘 성당은 1542년에 주민들이 개신교로 개종하여 주요 부분은 루터교가, 서쪽 성가대석과 지하 경당은 1803년까지 성 베네딕도 수도회가 관리하는 등 가톨릭이 관여하고 있는 공동 성당이 되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3-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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