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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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순례 정신 분명히 보여주는 로마네스크 순례길 성당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37. 콩크의 생트 푸아 수도원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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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크의 생트 푸아 수도원 성당 외관. 샤를마뉴 길 바로 밑의 급경사면에 세워진 이 성당은 자욱이 낀 안갯속에서 볼륨을 드러낸다. 출처=Wikimedia Commons


12세 푸아 성녀 유해 몰래 옮겨와 성당 건축

프랑스 서남부의 작은 마을 콩크(Conques)는 두 개의 강이 만나 생긴 조개 모양의 협곡 경사면에 있다. 콩크라는 지명은 라틴어 콩카(concha, 조개껍데기)에서 나왔다. 지금은 세속을 떠나 고요한 세계에 숨어든 것 같은 곳에 300명 정도 살고 있는데, 베네딕도회 수도원을 설립했을 당시의 모습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러나 1050년경부터 1250년경 사이에 생트 푸아 수도원(Abbatiale Sainte-Foy de Conques) 성당이 세워졌을 때는 3000명이 살고 있었다. 이 마을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길의 중요한 중계점이었으며, 성녀 푸아의 유해를 가져온 이후 일 년 내내 순례자들이 무리 지어 찾아오는 번화한 땅이었다.

성녀 푸아는 290년경 콩크의 남서쪽에 있는 아쟁(Agen)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겨우 열두 살 나이에 그녀는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에 우상에게 제사 지내기를 거부하여 옷이 찢기고 채찍질 당했다. 그러나 찢어진 옷은 금세 새하얀 옷으로 바뀌었다. 불로 태워 죽이려고도 했으나 불은 금세 꺼져버렸다. 결국 지하 감옥에 던져져 그다음 날 참수당했다. 이때부터 성녀 푸아는 일으킨 기적으로 이름이 높아져 크게 공경받았다.

9세기 설립한 후 곧바로 경제적으로 곤란해진 콩크 수도원은 강력한 성인의 유해를 가져야 했다. 사라고사의 유명한 유해를 훔치기 위해 수사 두 명을 보냈으나 실패로 끝났다. 그 후 공경받고 있던 성녀 푸아의 존재를 알고 수사 아로니스(Aronis)를 아쟁에 보냈다. 그는 신분을 속이고 10년 동안 지내다가 신뢰를 얻어 유해 관리권을 얻게 되자, 866년에 성녀 푸아의 유해를 무덤에서 훔쳐 콩크로 갖고 돌아왔다. 당시에는 이런 종류의 경건한 절도 행위는 너무 흔하여 이를 “몰래 옮김(stealthy translation)”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후 많은 순례자의 순례 경로가 아쟁에서 콩크로 바뀌면서 수도원은 부를 얻게 되었고 마을은 번성하게 되었다. 이에 원래 수도원 경당은 부수고 대규모의 성당을 건설했다. 이 성당은 후에 개축되지 않아 보존 상태가 좋은 초기 로마네스크 성당이기도 하다.

샤를마뉴 길 바로 밑의 급경사면에 세워진 이 성당은 자욱이 낀 안갯속에서 볼륨을 드러낸다. 북쪽에는 산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옹벽을 세웠고, 남쪽으로도 옹벽을 세 단 세워 성토하고 그 위에 수도원 회랑을 지었다. 수도원으로서도 이상적인 자리였지만, 그 이후 그렇게도 중요한 수도원과 성당이 다시 세워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땅이 이러니 성당을 지을 수 있는 면적이 작아, 서쪽의 성당 앞 광장에서 보면 성당은 낮은 곳에 묻혀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반대로 동쪽에서 보면 거대한 구조물이 계곡 위에 자리 잡은 수도원 전체를 지배하는 듯이 보인다. 이렇게 볼 때 역설적으로 바로 이런 곳에 지어진 생트 푸아 성당만큼 중세의 순례 정신을 분명히 이해시켜 주는 장소는 없을 것이다.
 
콩크의 생트 푸아 수도원 성당 주보랑. 출처=Jean Yves Juguet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 성당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길 위의 성당은 제단이 방사형 경당이 있는 주보랑으로 둘러싸이며, 회중석, 수랑, 원형 제단에도 측랑이 있었다. 그러나 콩크 성당은 평지에 여유 있게 세워진 툴루즈의 생 세르냉 성당과는 달리, 계곡의 좁은 경사면에 지어져 지형에 따라 평면의 여러 요소가 매우 조밀하게 구성되었다. 생 세르냉은 수랑의 길이가 5베이지만 콩크는 3베이고, 생 세르냉은 중랑의 길이는 11베이지만, 콩크는 4베이다. 그래서 횡랑은 35m인데 이에 비해 중랑은 20.7m로 상당히 짧다. 평면의 네 팔도 짧아 한 바퀴 도는 거리도 짧았다. 반원 제단의 깊이도 덜 깊다. 그 주변의 주보랑에는 경당을 5개 배열하는 일반적인 방식과는 달리 3개를 두고, 그 대신 횡랑의 동쪽 면에 좌우 2개씩 모두 4개의 경당을 더 두었다.

회중석과 마찬가지로 원형 제단과 수랑에도 측랑이 있어서 이 성당을 찾아오는 순례자들은 성소, 회중석과 횡랑 등의 중랑을 방해하지 않고, 측랑과 주보랑을 계속 지나 내부를 한 바퀴 돌며 수랑과 주보랑으로 열린 경당을 찾아갈 수 있었다. 이런 배열은 순례길 위의 수도원에서 크게 환영받았는데, 이는 고딕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요소였다. 한편 주보랑과 성소 사이에는 금속 그릴로 막혀 있다. 이 그릴은 푸아 성녀에게 기도하여 기적적으로 풀려난 이들이 자기가 묶여 있던 사슬을 콩크로 와서 성녀에게 바친 것으로 만들어졌다.
 
콩크의 생트 푸아 수도원 성당 내부. 출처=Jean Yves Juguet

순례길 성당의 유사함은 평면만이 아니라 중랑 벽면에서도 뚜렷하다. 이는 회중석만이 아니라 수랑과 원형 제단 직선 부에도 같은 높이로 반복된다. 중랑 벽은 노란 석회암의 마름돌을 정연하게 쌓았다. 중랑의 높이는 22m, 중랑 폭 6.6m인데, 높이가 폭의 3배 이상이다. 이것은 툴루즈의 생 세르냉의 높이 21m가 중랑 폭 8.8m의 2.4배를 넘는다. 이 비는 5개의 순례 성당중에서도 가장 크고, 심지어는 고딕의 랑스 성당과 비슷하다.

대(大) 아케이드와 트리뷴의 하중을 받는 아치나 그 안쪽에 묻힌 아치는 모두 ‘상심(上心) 아치’다. ‘상심 아치’란 높이를 조정할 필요가 있어서 반원의 중심을 올려 만든 아치를 말한다. 이 아치를 받치는 원기둥도 단순하고 가늘다. 따라서 평면도를 보고 상상하는 것보다 내부 공간은 실제로는 훨씬 높고 늘씬하다. 한편 어두운 내부에 빛을 비추는 교차부의 채광탑은 내부의 높이를 한층 강조해 주고 있다.
 
콩크의 생트 푸아 수도원 성당 포탈 위 ‘최후의 심판’ 부조. 출처=Wikimedia Commons

포탈 위 팀파눔 ‘최후의 심판’ 부조 걸작

대(大) 아케이드 위에는 고창층이 없이 트리뷴만 있다. 트리뷴은 2련(連) 아치로 열려 있어서 2층의 벽면을 통해 내부 전체를 대략 볼 수 있다. 그 결과 종래에는 회중석과 횡랑과 원형 제단의 형태나 높이가 제각기 다른 구조물처럼 보였던 것이, 생트 푸아 성당에서는 공간이 더욱 균질해지고 일체화하고 있다. 마치 고딕 대성당 공간의 전조를 보는 듯하다.

트리뷴은 중랑의 원통 볼트의 횡압력을 받는 구조적인 역할을 하지만, 순례길 성당에서는 실제로 쓰였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전에서는 동쪽 끝 원형 제단을 제외하고 트리뷴이 전체를 돌고 있다. 그러나 콩크에서는 트리뷴이 횡랑의 남북 끝에 계획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잘려있고 좁은 통로로 이어져 있다. 중랑에는 원통 볼트, 측랑에는 교차 볼트, 그 위의 트리뷴에는 1/2 원통 볼트가 덮여 있다. 이것은 홀 성당 형식에 트리뷴을 둔 오베르뉴 성당과 마찬가지지만, 횡단 아치가 원통 볼트를 구획하고 바닥에서 올라가는 붙임 기둥(pilaster)이 이어짐으로써 베이의 구분은 매우 분명하다.

순례자들은 콩크에 도착해서 강복 받기 위해 성당으로 들어가기 전, 중앙 포털 위의 팀파눔(tympanum)이라는 반원형에 전체를 3단으로 구성한 걸작 ‘최후의 심판’ 부조를 바라보게 된다. 중앙에는 세상이 끝날 때 재림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심판관으로 앉아 계신다. 왕좌에 앉아 오른손은 구원받은 자를 위쪽으로 가리키고, 왼손은 저주받은 자를 아래쪽으로 가리키고 계신다. 이처럼 로마네스크 성당의 문은 천국의 기쁨과 지옥의 고통을 준엄하게 상기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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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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