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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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빛의 성경’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49-끝) 생트샤펠, 그리고 스콜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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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트샤펠 내부. 출처=Wikimedia Commons

완벽한 레요낭 양식의 프랑스 왕실 경당

파리에 있는 생트샤펠(Sainte-Chapelle)은 10세기에서 14세기까지 프랑스 왕들이 거주하던 팔레 드 라 시테(Palais de la Cit) 안에 있는 완벽한 레요낭(Rayonnant) 양식의 왕실 경당이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13세기 스테인드글라스, 더구나 그것을 모두 남기고 있는 귀중한 건축물이다.

이 경당은 후에 성인 된 루이 9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통치한 마지막 라틴 황제 볼드윈 2세(Baldwin II)에게 2년간의 협상 끝에 1239년에는 그리스도의 가시관을, 1241년에는 참 십자가 조각을 포함해 모두 22개의 다른 유해를 얻었다. 그 비용은 13만 5000 리브르였는데, 왕국 연간 수입의 절반이 넘었다. 그는 이 유해가 파리 외곽에 도착했을 때 그 유해와 함께 맨발로 길을 걸어 왕궁으로 모셔갔다. 생트샤펠은 이 유해를 모시고자 1239년에 계획되어 1243년부터 짓기 시작해 1248년에 헌당되었다. 스테인드글라스 전체를 포함한 경당을 짓는 데는 4만 리브르가 들었다. 그러나 이 유해를 보관하는 유해함에는 10만 리브르를 썼다.

경당은 위아래 두 층으로 되어 있다. 아래층은 궁궐의 신하, 시종, 군인들이 사용했고, 거룩한 유해가 보관된 위층은 왕실과 측근만을 위한 것으로 왕의 거실과 직접 이어졌다. 동로마 황제가 궁전에서 하기아 소피아로 가듯이, 루이 9세도 궁전에서 생트샤펠로 직접 나갈 수 있었다. 참 십자가와 가시관 등 그리스도 수난의 유해를 담은 유해함은 대혁명에 녹았다. 따라서 지금은 경당에 성유물을 보관하고 있지는 않으며, 가시관은 1806년부터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이 경당의 건축가로 추정되는 피에르 드 몽트뢰유(Pierre de Montreuil)는 석조물을 최소화하고 15개의 대형 스테인드글라스로 된 거대한 개구부를 만들었다. 철을 능숙하게 사용하여 돌을 보강하고 가벼운 볼트 천장을 설계했다. 벽과 창문은 풍압에 견디도록 두 개의 철제 사슬 벨트로 밖에 고정했다. 그 결과 그 하중을 외부 버팀벽에 전달해 크고 거대한 베이 4개로 덮인 단랑식 경당을 지을 수 있었다. 이로써 벽은 사라지고 찬연히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라는 빛의 벽이 내부 전체를 감쌌다.

2층의 경당은 길이 36m, 폭 17m, 높이 42.5m로 프랑스의 새 고딕 대성당과 크기가 비슷하다. 서쪽 끝의 장미창을 제외하고 동쪽 끝은 7개의 창을 포함하여 낮은 징두리 벽 위는 모두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어져 있다. 그 면적은 670㎡나 된다. 무거운 아케이드도, 어두운 트리포리움도, 고창층도 없다. 빛의 벽을 지지하는 모든 수직 구조는 7개의 가느다란 원기둥 다발로 만들어 기둥의 두께는 가늘게 ‘보이도록’ 했다. 또한 회중석의 창(15m)이 반원 제단의 창(13m)보다 약간 높아 경당은 실제보다는 더 길게 보인다.
 
생트샤펠 스테인드글라스. 출처=Peter Nijenhuis

스테인드글라스 빛에 감싸인 은총의 집

생트샤펠 안은 천상의 예루살렘 건축 재료인 귀금속과 보석에 빗대어진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한 빛과 색채로 물들어 있어 우리가 이미 그곳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15개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창세기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이르는 1113개의 장면이 그려져 있다. 둥근 제단을 향해 오른쪽 측면에서 입구에 가장 가까운 곳에는 수난의 유물에 관한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그중 14개는 아래에서 위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연속적으로 읽을 수 있다. 그리스도 수난과 대면하는 서쪽 장미창 중앙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그려져 있는데, 15세기 말 플랑부아양(Flamboyant) 양식으로 바꾸었다. 그야말로 찬연하다고밖에는 더 할 말이 없는 저 공간은 한 권의 책이 장대하게 펼쳐져 있는 ‘빛의 성경’이요, 빛에 감싸인 은총의 집이다.

생트샤펠의 공간과 형태는 한마디로 ‘입자적(粒子的)’이다. 천장, 낮은 벽, 천장, 가느다란 기둥 위에서 모두가 심지어는 점으로 분해되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많은 입자는 스테인드글라스다. 그래서 그 안을 계속 움직이면 마치 보석을 돌리듯이 고딕 공간은 다양한 빛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무한히 변화한다.

고딕 대성당 정면은 랑스처럼 탑을 포함해 네 개의 층으로 나뉜다. 제일 아래층은 세 개의 포탈로 나뉜다. 중앙 포탈이 우월하지만, 세 포탈은 체계가 같다. 포탈 위의 아키볼트(archivolt)는 띠 모양으로 분할되면서 문을 향해 수렴한다. 아키볼트는 다시 작은 조각물로 나뉘지만, 그 띠도 작은 조각으로 동등하게 분할된다. 문의 옆 벽도 원기둥으로 나뉘고, 원기둥은 다시 문설주 상으로 나뉜다. 이러한 분할 방식은 내부 평면에서도 중랑 벽에서도 계속 반복된다.

고전건축에서 부분은 전체의 통제를 받지만, 고딕은 돌로 만든 요소를 체계 안에서 계속 나뉘며 분절된다. 그러나 체계 안에서는 동등하다. 기둥은 가는 기둥 여러 개가 묶여 있는 듯이 보이며, 위로는 제각기 볼트의 리브로 이어진다. 이리하여 고딕 대성당의 공간과 벽체는 계속 분할되고 물질은 작은 입자로 분해된다. 중량감은 사라져 비물질적이고 가벼운 공간이 되어 나타난다. 왜 그랬을까? 하느님은 결코 형상이 있는 구체적인 공간 안에 한정될 수 없는 분이시고, 여러모로 나타나시되 사람에게 제각기 동등하게 응답하시기 때문이다.
 
생트샤펠 천장. 출처=Javi Masa

하늘과 땅을 조화시킨 돌로 지어진 신학

미술사가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 sky)는 역저 「고딕 건축과 스콜라 철학」(1957)에서 당대의 스콜라 철학과 고딕 대성당과 동시에 평행하게 나타났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고딕 대성당이 스콜라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설계되고 지었다고 건너짚어서는 안 된다. 스콜라 철학과 고딕 건축은 부분과 전체의 관계에서 평행하다.

스콜라 철학의 기술 형식과 대성당의 건축 방식은 같다. 스콜라 철학의 모든 기술(記述)은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명제에서 전개된다. 전체는 ‘책’으로, ‘책’은 숫자가 붙은 ‘장’으로 분할하고, ‘장’의 순서는 논리적 종속 체계를 따른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은 전체가 ‘부(部, partes)’로, ‘부’는 더 작은 ‘부’로 분할된다. 부는 ‘부분’, ‘문제’, ‘구분’으로, 이들은 각각 다시 ‘항(項, articuli)’으로 나뉘며 세부를 향해 계속 계층적으로 분해된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카를로 크리벨리 그림, 15세기. 출처=Wikimedia Commons

로마네스크에는 이런 계층성이 없고 구성하는 부분도 더 이상 분할되지 않으니, 부분은 등가(等價)가 아니다. 그러나 고딕 대성당에서는 전체가 회중석, 횡랑, 슈베(제단부)라는 세 부분으로, 각 부분은 ‘랑(廊)’으로 분해된다. 슈베도 또 같은 방식으로 제단과 주보랑으로 분할된다. 지주는 피어로 분할되고, 피어는 다시 작은 기둥(샤프트)으로 분할되며, 작은 기둥은 다시 가는 작은 기둥으로 다시 분할된다. 이와 같은 계층성은 고딕 대성당 전체를 덮고 있다. 이러한 분할의 극한이 바로 생트샤펠이다.

「신학대전」이 신학과 인간 철학을 조화시켰듯이, 고딕 대성당은 새 예루살렘을 그리며 하늘과 땅을 조화시켰다. 바로 그래서 「신학대전」은 신학의 고딕 대성당이며, 고딕 대성당은 돌로 지어진 신학이라 말하는 것이다. 고딕 대성당은 그런 존재였다.


※ 지난 1년 동안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를 연재해주신 김광현 안드레아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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