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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생활고에 시달리며 후두암 투병중인 이강옥씨

"아이들과 열심히 잘 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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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 걱정하지 말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 해."

 식도후두암으로 서울의 한 병원에서 투병 중인 이강옥(55)씨가 병실에 찾아온 딸 수진(11)이와 아들 민재(10)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성대제거 수술을 받은 이씨는 말을 하지 못한다. 필담으로 자녀에게 마음을 전하지만, 뼈만 앙상하게 남은 팔에 혈관 주사가 꽂혀 있어 연필을 잡은 손이 쉴 새 없이 떨린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이씨는 서울 송파지역자활센터 무료빨래방 사업단에서 일했다. 방 한 칸 마련할 돈이 없어 두 아이는 여동생 집으로 보내고 이씨는 고시원에서 살았다. 이씨가 빨래방에서 일하며 받은 70여만 원은 고스란히 아이들 양육비로 쓰였다.

 민재는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러본 적이 거의 없다. 아기때부터 고모손에 자라 고모와 고모부가 민재에게는 엄마 아빠다.

 이씨 후견인 이병옥 사회복지사(후견인 송파지역자활센터)가 "민재는 아빠를 `수진이 누나 아빠`라고 부르곤 한다"고 귀띔했다. 이주여성인 친엄마는 민재가 백일이 됐을 무렵에 집을 나갔다.

 이씨는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화목하게 살았는데 어느 날 집사람이 집을 나갔다"고 했다. 사랑스러운 아내요 두 아이 엄마였던 부인은 온다간다 말 한마디 없이 사라졌다. 집안은 풍비박산 났다. 아내 친정이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이씨는 그마나 조금 갖고 있던 논과 밭을 팔아 처가를 도왔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 거나 마찬가지다. 그 바람에 집안이 거덜 나자 아내도 자취를 감춰버렸다.
 이씨는 눈만 뜨면 아내를 찾으러 나갔다. 출입국사무소 등 아내가 갈 만한 곳은 안 가본 곳이 없다. 이씨는 눈물로 4년을 보낸 뒤 아내 찾는 걸 포기했다. 사는 게 넉넉하지 않은 동생에게 맡긴 자녀 양육비를 당장 벌어야 했다.

 생계를 이어가려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닥치는 대로 일했다.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손수레에 채소를 싣고 팔러 다녔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고시원에서 쪽잠을 잤다. 시간이 갈수록 몸은 약해지고 당뇨합병증에 시달렸다. 치아도 다 부서져 음식도 씹어 넘기지 못하는 상황이다. 후두암 종양을 제거하려면 수술비와 치료비를 합쳐 2000여 만 원이 필요하지만 수중에 1만 원 짜리 지폐 한 장이 없는 형편이다.

 그래도 이씨는 `희망`을 말한다. 병석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 빨래방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무료빨래방은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 옷가지를 수거해 세탁해 주는 곳이다.

 이씨는 "빨래방 동료들이 자리를 비운 내 몫까지 하느라 힘들어한다"며 "병이 나아서 아이들과 예전처럼 사는 게 꿈"이라고 공책에 힘겹게 썼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후견인 : 송파지역자활센터 이병옥 사회복지사


 이강옥씨는 자신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늘 긍정적인 모습으로 무료빨래방 사업 수혜자들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는 한 없이 자상한 아버지입니다. 가난하고 힘 없는 가장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꼭 필요합니다. 이씨가 건강을 회복해 아이들을 돌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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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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