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인 줄리엣 마날로(54)씨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지 5년째다. 그러나 수중에 동전 한 닢도 남아있지 않다.
"지금까지 얼마를 벌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돈이 생기는 대로 필리핀으로 부쳤거든요."
그는 오히려 암에 걸렸다. 집안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자녀들을 부양하느라 과로한 탓이다. 그는 10여 년 전 이혼했다. 10년간 남편 폭력을 꾹 참고 살다가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그는 "남편은 돈을 벌 생각은 않고, 어쩌다 돈이 생기면 술을 마시는데 다 써버렸다"고 말했다. 첫째 딸이 생긴 이후로는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는 "아이가 더 생기면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둘째 아이를 가졌지만 오히려 아이들까지 때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혼 후 노점상에서 채소를 팔고, 식당에서 일하며 1남 1녀를 키웠다. 그러나 하루에 버는 돈은 겨우 20페소(한화 549원). 재료값도 떨어지지 않는 수입이라 아이들을 중학교에 보낼 수 없었다. 두 자녀는 성인이 됐지만, 낮은 학력 때문에 변변한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다.
"한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그는 급한 대로 여행비자를 발급받아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다행히 플라스틱 공장에 다니고, 파출부로 일하면서 한 달에 50만 원을 벌었다. 이중 필리핀에 30만 원을 부치고, 월세로 15만 원을 냈다. 그는 남은 5만 원을 아끼고 아끼느라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일했다.
그러던 지난 1월 대변에 피가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기침과 오한이 계속됐고 급기야 피까지 토했다. 두 달여를 꾹꾹 참다 찾아간 곳이 성가소비녀회가 무료로 운영하는 성가복지병원(서울 하월곡1동)이었다. 심각한 병세로 성가복지병원에서도 손을 쓸 수 없어 대학병원으로 옮겨진 뒤, 직장결장암 판정을 받고 긴급 수술을 받았다.
수술 결과가 좋아 회복기에 들어섰지만, 그의 마음은 편치 않다. 불법체류자 신분 때문이다. 그는 강제 출국 조치를 당하지 않을까 하루하루 마음을 졸인다. 불법체류자는 보험혜택도 받을 수 없다. 지금까지 누적된 치료비만도 1700만 원인데, 퇴원 후에도 12번의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 한 번 치료를 받는 데 120만 원이 든다.
하지만 가장 큰 고통은 자식에 대한 그리움이다. 자녀들이 전화도 없는 낙후된 지역에 살아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는다. "아이들한테 걱정을 끼치는 것이 싫어서 병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어요. 그저 몸이 좋지 않아 잠깐 입원했다고만 했어요. 딸이 몸 조심하라고 당부하며 마음 아파했어요."
그의 유일한 소망은 아이들과 재회하는 것이다. 그는 "그러기 위해서라도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몸이 낫는 대로 다시 일을 하고 싶어요. 돈을 모아서 필리핀행 비행기표를 사려고 합니다. 어서 고향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안아주고 싶어요."
김은아 기자 euna@pbc.co.kr
▨후견인 : 채정선(성가소비녀회) 수녀
줄리엣씨는 응급 수술로 위험한 고비를 넘겼지만 병원비로 큰 빚을 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투병 중에도 알음알음 도움을 준 분들을 위해 매일 기도를 바치는 줄리엣씨에게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청할 뿐입니다.
성금계좌 (예금주:평화방송)
국민은행 004-25-0021-108
우리은행 454-000383-13-102
농협은행 001-01-306122
※줄리엣씨에게 도움을 주실 독자는 7일부터 13일까지 송금해주셔야 합니다. 이전 호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을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508)에게 문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