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선물한 독자들께 행복한 소식 전합니다
▲ 새로 입주한 연립주택 입구에 나온 김종근씨는 “이렇게 깨끗하고 아늑한 보금자리에 입주할 수 있도록 사랑을 베풀어주신 많은 평화신문 후원자들께 꼭 감사말씀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오세택 기자 |
낡고 허름한 세간도, 너절한 이불과 가재도구도, 팍팍한 살림살이도 다 그대로다. 지병이 나은 것도 아니다. 지적장애 3급 외아들이 호전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3년 전과는 모든 게 달라졌다. 다시 만난 김종근(69)씨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일단 철거를 앞둔 대전 신흥동 달동네에서 나와 가양동의 깨끗한 연립주택으로 이사했다. 벌써 2년이 다 됐다. 세간은 그대로지만 살림에는 부족함이 없다. 외아들 두홍(27)씨도 대전 밀알복지관에서 운영하는 공동생활가정에 들어가 매달 20만 원씩 내고 제과제빵 기술을 배우느라 여념이 없다. 기술을 제대로 익히는 건 쉽지 않은 일이 될 터이지만,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였던 아들의 삶에 ‘희망’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김씨는 마음이 넉넉해진다.
“제가 이렇게 호강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아파트 재개발을 앞둔 골목에서 힘겹게 살다가 빌라에 입주하니 꿈만 같아요. 전에는 방안에서만 기어 다녀야 했는데, 이젠 걸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게 좋아요. 동구청과 주민센터, 복지관 사회복지사님들, 특히 2011년에 따뜻하게 후원해주신 평화신문 독자 여러분들의 사랑 덕에 우리 가족이 살 수 있었어요. 앉은뱅이가 된 데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다가 이제 목발에 의지해서나마 걸을 수 있고 아들도 배움의 기회를 갖게 됐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저는 감사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그의 표정은 밝았다. 지난 2011년 성금을 받은 직후 7시간에 걸친 대수술 끝에 15∼20㎝ 크기 인공뼈를 척추에 삽입한 뒤 오랜 세월 재활을 해온 덕에 김씨의 허리 상태는 상당히 호전됐다. 목발에 의지해 경로당에도 다니고, 잠깐잠깐 외출도 한다. 그 덕에 우연히 동구청에 갔다가 그곳에서 만난 희망복지지원단 사회복지사들의 주선으로 지난 2012년 12월 대전 가양동에 신축한 연립주택에도 입주할 수 있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매입 임대하는 이 빌라 보증금 560만 원은 전세금과 후원금을 합쳐 해결했다. 임대 기간도 처음엔 2년마다 계약을 갱신, 10년만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20년으로 늘어난 데다 관리비도 2∼3만 원밖에 되지 않아 남부러워할 게 없다. 그 전에 영구임대아파트에도 당첨됐지만, 아파트 관리비와 보증금이 하도 비싸 이사를 포기했던 터여서 기쁨은 더 컸다.
걱정이 있다면 아들의 장래뿐이다. 공동생활 가정에 입주해 제빵 기술을 익힌 지 2년이 다 돼가는데도 여전히 기술을 다 배우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시험도 치지 못하고 있어서다. 그래도 잘 되겠지, 하는 믿음으로 그는 노후를 보낸다.
그간 김씨를 만나 틈틈이 뒷바라지해온 이채숙(루치아, 대전 동구청 가정복지과 드림스타트 담당) 사회복지사는 “두 차례 대수술과 오랜 재활에도 불구하고 막노동을 하다 다친 허리를 고치지 못했지만 저만 보면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곤 한다”며 “평화신문 독자 여러분께도 감사 말씀을 꼭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 배민철(왼쪽)씨가 어머니 문봉신씨와 함께 집에서 사과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힘 기자 |
석 달 후인 11일 서울 방이동 그의 집에서 다시 만난 배씨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몰라보게 건강을 회복한 모습이었다. 배씨와 어머니 문봉신(데레사, 57)씨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배씨는 “이제는 밥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