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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혼자 살아온 김상호씨는 25년째 고물상으로 하루하루 벌어 살고 있다. 이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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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영남 회장. |
25년째 고물 주워 파는 김상호씨
고아로 태어나 홀로 생계 꾸려와
잠잘 공간 없어 인근 공터서 기거
꽃샘추위가 다시 찾아온 3월 24일 서울 2호선 당산역 인근. 휑한 도로변 한편에서 만난 김상호(58)씨는 낡은 손수레 옆에 쭈그리고 앉아 기름 때가 잔뜩 묻은 손으로 무언가 열심히 작업 중이었다. 자전거 바퀴를 펜치로 힘겹게 해체하는 일이다. 그는 “새벽까지 열심히 고물을 주워다 팔면 하루 1~3만 원 정도 대중없이 받는다”며 “그렇게 해야 다음날 밥을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태어날 때부터 할아버지 손에 자랐다. 5살 이후엔 대구의 한 보육원에 맡겨졌고, 초등학교에 다니다 중퇴했다. ‘고아’라고 놀리는 또래와 교사의 차별 때문이었다. 그는 나중에 친척들에게서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세상을 떠났다”고만 들었다. 부모, 형제 없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김씨는 남들은 다 학교에 다닐 학창시절부터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지퍼공장을 시작으로 한 달에 2700원씩 받으며 재봉틀 공장에서 옷감을 만드는 일도 했다. 스무 살 전까진 대구의 한 보육원에서 일하며 그런대로 지냈지만, 이후 먹고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아 사글셋방과 여관방을 전전긍긍했다.
“서울 가면 돈 많이 번다”는 친구의 소개로 서울 염창동과 영등포동 일대에서 가판대를 펼치고 과일 장사도 했고, 핫도그와 군밤도 팔아봤다. 그러다 플라스틱을 제조하는 사출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친구와 동업도 했다. 그러나 1년 만에 친구의 배신으로 돈은 돈대로 떼이고 빈털터리로 다시 혼자가 돼버렸다. 이후 1992년부터 25년째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폐지와 가전제품 등을 고물상에 팔며 하루하루 살고 있다.
김씨가 가진 것이라곤 고물상에서 빌려준 손수레와 공구뿐이다. 잠잘 곳이 없어 낮에는 고물상 휴게소에서 쉬고, 밤에는 인근 공터나 외진 곳에서 잠을 청한다. 지난 겨울 영하의 날씨에도 비닐 한 겹 씌운 손수레 위에서 잠을 청했다.
김씨는 치아도 몇 개 없다. 13개를 뺐는데, 10개는 더 뽑아 틀니를 껴야 하는 상황이다. 앞니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 죽도 겨우 넘길 정도다. 서울 당산동본당 측에서 일부 비용을 지원해 치과 치료를 받고 있지만, 틀니 제작에만 340만 원이 든다. 관절이 쑤시고, 가끔 장이 꼬이는 일이 생기면 항생제를 사다 먹는 정도다.
김씨는 “제 삶을 비관했고 지금도 돈 한 푼 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마음이라도 편히 갖고 살려고 노력한다”면서 “틀니도 하고, 작은 월세방 하나라도 얻을 수 있다면 바람이 없겠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후견인 / 노영남(요한 사도) 회장
서울 당산동본당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평생 홀로 살아온 김상호씨는 힘든 가운데에도 열심히 살고자 노력 중입니다. 김씨가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가톨릭평화신문 독자 여러분께서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