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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군자(요안나) 할머니 장례 미사에서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가 분향하고 있다. |
위안부 피해 진상을 몸소 알린 김군자(요안나) 할머니가 23일 노환으로 선종했다. 향년 91세.
1926년 강원도에서 태어나 10대에 부모를 여의고, 1942년 17세에 중국 일본군 위안소에 강제동원된 고인은 해방 후에도 홀로 지내다 1998년부터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살아왔다.
고인은 생전 “하루 40여 명을 상대하는 성 노리개로 살았고, 도망치다 붙잡혀 군홧발에 고막이 터지고, 팔과 온몸이 패이는 고통 속에 살았다”며 위안부 참상을 증언하는 데 힘썼다. 고인은 거동할 수 없을 때까지 매주 서울 종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참석했다. 2007년에는 미국 의회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 참석해 과거사를 증언하며 ‘위안부 결의문’이 채택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고인의 꾸준한 ‘선행’은 잘 알려져 있다. 정부에서 받은 보상금을 모아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위해 써달라며 아름다운재단에 1억 원을 기부했다. 2015년에는 수원교구에도 성금 1억 원을 전달하는 등 전 재산을 사회를 위해 기꺼이 내놨다.
고인은 2015년 이뤄졌던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에 대해 “피해자는 우리인데 정부가 어떻게 함부로 합의를 하느냐, 일본의 공적 사과와 배상을 받아야 한다”며 끝까지 일본 정부의 진정 어린 반성과 사과를 촉구했다.
1998년 세례를 받은 고인은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동안 매 주일 빠지지 않고 수원교구 퇴촌본당 교중 미사에 참여했다. 신자들은 본당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행사에도 기꺼이 참여했던 고인을 역사의 아픔을 지닌 어르신이자,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선뜻 장학금을 기부하는 의인으로 기억했다.
고인은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주례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다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참여했다. 교황에게 그림 ‘못다 핀 꽃’을 선물하며 위안부 피해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 끝까지 애썼다. 수원교구는 고인을 ‘교구 은인’으로 예우하며 25일 고인이 다니던 퇴촌성당에서 교구장 이용훈 주교 주례로 장례 미사를 거행했다.
이 주교는 “할머니께선 형언할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한평생 가슴에 묻고 사셨지만, 따뜻한 마음과 진심 가득한 선행, 기부를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이바지하셨다”며 “이 시대의 예언자이자 천사요, 의인으로 사시다가 주님 곁으로 가신 고인의 숭고한 뜻과 인간애를 이제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고인의 유해는 미사 후 나눔의 집 법당에 안장됐다. 이로써 생존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37명으로 줄었다. 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