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사업 밑천으로 집 팔았는데 사업 실패 후 아들 3년째 연락 두절... 아픈 관절에 옥탑방 신세로 살아가
아픈다리를 끌고 옥탑방에 도착한 장희자씨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3월 24일 금요일 오후, 82살 장희자(막달레나)씨가 멀리 골목길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혹여나 집을 찾지 못할까 봐 걱정이 돼서 내려왔다고 했다. 장씨는 앞장서서 3층 옥탑방으로 향했다. 그렇지만 2층 난간을 붙잡고 한참을 쉬다가 다시 계단을 오르는 등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방에 도착하자 장씨는 침대에 걸터앉아 숨을 헐떡이며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장씨의 다리가 몹시 불편하게 된 지는 꽤 됐다. 15년 전 인공관절 수술을 했지만, 관절은 여전히 좋지 않다. 통증이 계속돼 관절약과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계단을 오르기 힘들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어도 형편이 되지 않는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월 60만 원을 받고 있지만, 월세 15만 원, 가스비와 전기세 등을 내면 20만 원이 훌쩍 나간다. 쌀은 주민센터에서 지원을 받고 있지만 가장 걱정은 병원비다. “아이고 작년에 피부과에 갔더니 대상포진이라면서 ‘큰일 나실 뻔했다’, ‘돌아가실 뻔했다’고 빨리 병원에 입원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 달을 있다가 나왔어요.” 이때 그나마 모아뒀던 돈을 다 썼다. 주민센터의 도움이 없었으면 자칫 퇴원이 어려울 뻔했다.
장씨의 생활이 이렇게 어려워진 건 아들 때문이다. 아들이 충남 아산에 포장재(박스 제조) 사업을 시작할 때 집을 팔아 사업 밑천으로 줬다. 하지만 경쟁이 격화되면서 결국 공장은 문을 닫았다. 1억 원씩 주고 샀던 기계 2대는 고철값으로 팔렸다. 그때부터 옥탑방 신세가 됐고, 이곳에서 산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나마 집주인이 형편을 봐줘 월세를 올리지 않고, 자매처럼 의지하며 살고 있다.
아들은 3년 전부터 연락을 끊었다. “나도 집 없는 거지가 됐고, 공장이 망하고 나니 아들도 갈 데도 없는데, 그러니 날 또 돌볼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 연락을 안 한 거겠죠.” 하지만 아들이 보고 싶은 건 숨길 수 없었다. “그전엔 그래도 간간이 전화도 하고, 안부도 물었어요. 그런데 내가 갑자기 죽으면 아들도 없이 장례를 치를 수는 없잖아요. 아들이 어디 사는지는 꼭 알고 싶어요. 전화번호라도 알아놓고 어디 사는지는 적어놔야죠.”
어려움 속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건 신앙 때문이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를 제외하곤 주일 미사에 빠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장씨의 신조는 최대한 즐겁게 살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요. 나는 돈도 없이 지내도 되지만, 그저 어디서 지내는지 아들만 이 어미와 연락되면 좋겠습니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후견인 : 기광서 마티아(서울대교구 연희동본당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회장)
약을 늘 복용해야 하는 장희자 할머니는 정부 지원금 외에는 수입이 없어 생활이 힘든 상황입니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성당에도 열심히 나오며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신자 여러분의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성금계좌(예금주 : 가톨릭평화방송)
국민 004-25-0021-108
농협 001-01-306122
우리 454-000383-13-102
※장희자씨 가정에 도움 주실 독자는 2일부터 8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425)에게 문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