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니 겁내지 마라. 내가 너의 힘을 북돋우고 너를 도와주리라.”(이사 41, 10)
마음이 외롭고 무거울 때 누가 위로해 줄까. 영화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은 길을 잃어버린 소년이 두더지를 만나고, 위험에 빠진 여우도 동행하면서, 길에서 만난 지혜로운 말과 함께 소년의 집을 찾아가는 모험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소년과 두더지가 나누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지혜와 위안을 주는데, 등장하는 두더지, 여우, 말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다음에 크면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고, 시간을 낭비하는 가장 쓸데없는 일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일’이라는, 소년이 두더지와 나누는 소박한 대화들은 명언과 같아 마음에 새기게 된다. 상처로 인해 자신감을 잃고 외로운 이들이 상대를 격려하고 부족함을 채우는 가운데 서로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는 과정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따뜻한 용기를 준다.
이 단편 애니메이션은 흑백과 컬러의 조합으로 펜으로 그린 것 같은 그림체로 여백의 미와 원근감 표현이 뛰어난 60년대 중국의 수묵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한다. 이 작품은 2023년 2월 영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단편 애니메이션 수상에 이어 3월 제95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상을 받은 Apple의 오리지널 영화이다. 원작은 이미 전 세계 30개 언어로 번역된 베스트셀러 그림책으로, 소년과 두더지가 의미 있는 이야기를 가볍게 나누는 모습은 「어린 왕자」의 여우나 장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일러스트레이터였던 원작자 찰리 멕커시는 간결하게 선으로 표현한 그림과 선문답 같은 간단한 대화로 사랑, 희망, 우정, 친절, 공감 같은 삶의 중요한 주제들을 생각하게 하는데,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통찰을 보여주어 깊은 여운이 남는다.
영화 결말에 소년의 집에 가까이와 헤어지게 되자 소년은 “집은 장소가 아니다”라며 다시 친구들 곁으로 간다. 소년에게 집(home)은 친구들과 함께 있는 그 자체였다. 집을 경제 가치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함께 있으면 기쁨과 위로를 주는 행복한 집”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너구리가 소년에게 “사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우리가 함께하는 것”이라는 답과 맥락을 같이 한다. 올해 가톨릭영화제의 주제인 ‘함께 걷는 우리’와 일치하여 더욱 공감하는 부분이 컸다. 혼자서는 극복하지 못할 일도 함께할 때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다는 교훈을 얻으며, 마음을 다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면 너구리, 여우, 말과 같이 각자의 기질과 모습은 달라도 진정한 형제자매가 된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예수님의 부활로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믿었던 아브라함과 같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은총을 구하며,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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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숙 비비안나(가톨릭영화제 조직위원, 가톨릭영화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