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오가는 길에 꽃 잔치가 장관이네요. 부활이 이 시기에 있는 것이 이해됩니다. 앙상하던 가지에서 꽃이 피는 신비가 기적 같아요. 분홍 눈이 내렸어요. 머리에 손등에요. 마음도 꽃잎과 함께 봄 하늘로 오르고요.”
앞이 보이지 않는 김백한(마리아, 73)씨가 서춘배(의정부교구 병원 원목) 신부에게 보낸 문자다.
유난히 꽃을 좋아하는 그는 해마다 주님 부활 대축일이면 자신에게 작은 화분을 선물한다. 그렇게 하나씩 모아 베란다에 진열한 꽃들은 부활을 노래하듯 색깔별로 활짝 피어났다. 지금은 거동이 불편해 보조인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직접 손으로 잎을 만져보면서 물을 주고 분갈이도 했다.
“성탄 때 샀는데 아직도 피어 있는 꽃이 있습니다. 향은 없지만 오래가지요. 앞을 못 보지만 하느님 안에서 사는 제 모습과 똑 닮은 것 같아요.”
김씨는 27세 꽃다운 나이에 시력을 잃었다. 원인도 모르고 당시 의술로는 치료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약사가 되고 한창 일하던 중에 닥친 일이었다.
그는 당시 자신의 상황을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 빗대 표현했다. “똑같은데 내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더군요. 그렇게 한동안 원망도 하고 방황도 했습니다.”
2년간 홀로 동굴 속에서 지낸 김씨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굳게 다잡고 재활센터로 향했다. 거기서 시각장애인 기초 훈련을 모두 수료하고는 안마사로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공허했다. 부모님은 그가 30대에 돌아가셨고 친구들도 시력을 잃은 후 멀리하기 시작해 곁에 아무도 없었다. “종교도 없었는데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속마음 터놓을 수 있는 나이 지긋한 수녀님 한 분만 보내달라고….”
책을 좋아했던 김씨는 시력을 잃은 후에도 도서관에서 녹음된 책을 빌려다 들었다. 마침 그 건물에 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회가 있었고 회장 권유로 세례를 받게 됐다.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때 수녀님 한 분을 알게 돼 지금까지 저의 멘토가 돼 주고 계십니다.”
그는 신앙을 가진 후 완전히 달라졌다. 매일 새벽 가톨릭평화방송을 듣고,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성당으로 향한다. 김씨의 가장 큰 행복이다.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이 열매 맺고 피어나고 성장합니다. 온전히 저와 함께 계시지요.”
집에 있을 때는 온종일 묵주기도를 봉헌한다. 주님의 기도 100번, 자비의 기도 10단 등 서 있을 때 바치는 묵주, 앉아 있을 때 바치는 묵주 모두 따로 있다. “성모님 필요하신 데 쓰시라고 단수도 세지 않고 계속 봉헌합니다.”
밖에서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과 만나는 게 큰 즐거움이다. “내 마음속에 자매들 모습이 다 새겨져 있습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그는 천국에 가서 앞이 보이면 자매들을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시력은 잃었지만, 저에게는 사랑의 눈이 있습니다. 그 눈으로 보는 세상은 참 아름답습니다. 천국을 사는 것이지요. 시력을 잃은 후 진정 눈을 떴다고 할까요. 하느님은 정말로 우리 곁에 살아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