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빈민들의 대부’, ‘달동네 푸른 눈의 사제’. 60년간 한국에서 선교하며 평생을 가난한 이웃과 도시빈민들을 위해 헌신했던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안광훈(로베르토, Robert John Brennan) 신부가 3월 21일 서울 동서울병원에서 선종했다. 향년 84세.
1941년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안 신부는 사제품을 받은 이듬해인 1966년 한국에 왔다. 이후 원주교구에서 11년 동안 본당 사목자로 임했고, 그 시기 정선본당 주임 시절에는 고리대금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위해 1972년 정선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등 어렵게 지내는 이들을 위해 힘쓰는 등 처음부터 당시 힘들었던 한국인의 삶에 깊이 동반했다. 또 성 프란치스코 의원을 개원해 본당 신자뿐 아니라 지역민을 위해서도 봉사했다.
지학순 주교가 유신 정권에 의해 구속됐을 때 석방을 위한 항의 행렬에 동참하는 등 서슬 퍼렇던 시절에도 정의와 인권을 지키는 데 주저함이 없는 사제였다. 서울로 인구가 집중되고 재개발 붐이 한창 일던 1981년 안 신부는 서울 목동본 당으로 발령을 받았고, 이때 안양천변에 살다가 쫓겨나는 철거민들의 비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안 신부는 이들에게 성당 공간을 내어주고 철거 반대운동에 함께했으며, 새 터전(시흥시 목화마을)에서 그들이 자립해 살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왔다.
1992년 서울 미아6동 돌산 동네로 들어가 철거 위기에 몰린 주민들과 동고동락했다. 그는 병상에 눕기 직전까지도 사제관이 아닌, 주민들이 사는 동네에서 이웃으로 살았다. IMF 경제위기 때는 서울북부실업자사업단 강북지부(훗날 삼양주민연대)를 맡아 실업 문제 해결에 힘썼고, 저소득층 자립, 노숙인 자활 등 최근까지도 이 시대의 가장 가난한 이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삶을 실천했다.
그는 당시 서울대교구장이던 김수환 추기경에게 찾아가 밝힌 “도시 빈민 지역 주민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밝힌 뜻을 끝까지 실천했다. 1992년부터 삼양동선교본당 주임을 역임한 이후 줄곧 삼양동에 전셋집을 얻어 주민들 안에서 자신도 자발적 가난의 삶을 산 사제였다.
안 신부는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회원으로서 공동체 선교와 발전에도 이바지했다. 선교회가 선교지 젊은이들을 회원으로 받을 것을 결정하게 되면서 1985년 초대 신학원장으로 부임해 6년 동안 한국인 신학생들을 양성했다. 안 신부의 삶을 보고 배우며 사제가 된 한국인 골롬반 회원들에게 그는 선배이자 스승이었다. 안 신부는 선교회 한국지부의 부지부장과 재정 담당으로도 봉사했다.

2014년 제26회 아산상 대상을 수상한 그는 상금 3억 원을 그대로 빈민들을 위해 기부했다. 고국 뉴질랜드를 떠나 낯선 한국에서 평생을 지낸 그는 가난하고 힘없고 외면당하는 이들 곁에서 살면서 한국인들과 온전히 하나가 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2020년 대한민국 국적을 수여했다. 그리고 그가 기도한 대로 그토록 사랑해온 한국에서 영면에 들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0호실이며, 입관은 3월 23일 오후 5시다. 장례미사는 이튿날인 3월 24일 오전 10시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주례로 거행된다. 장지는 배론성지 천주교묘원이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안광훈(로베르토, Robert John Brennan) 신부 약력(성골롬반외방선교회 제공)
1941년 12월 14일 : 뉴질랜드 오클랜드 출생
1959년 2월 :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입회
1965년 7월 3일 : 뉴질랜드에서 사제수품
1966년 9월 15일 : 한국 도착
1968년 8월~1969년 8월 : 원주교구 사직동본당 주임
1969년 8월~1970년 9월 : 원주교구 정선본당 주임
1971년 4월~1971년 9월 : 원주교구 단구동본당 주임
1971년 9월~1979년 11월 : 원주교구 정선본당 주임
1981년 7월~1985년 8월 : 서울대교구 목동본당 주임
1985년 6월~1990년 12월 :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한국지부 초대 신학원장
1992년 12월 : 서울대교구 미아 선교본당 주임
1995년 4월~1998년 4월 :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한국지부 부지부장
1992년 5월~2026년 : 서울대교구 (도시)빈민사목위원회 위원
1999년~2003년 : 서울대교구 삼양동 선교본당 초대 주임
2003년 11월~2016년 9월 : 삼양주민연대 (구 서울북부실업자 사업단 강북지부) 대표
2004년 4월~2022년: 한국지부 재정 담당
2012년 3월~2015년 : 서울대교구 삼양동 선교본당 주임
2012년 서울시 사회복지대회 대상 수상
2012년 10월 29일 : 서울시 명예시민권 취득
2014년 : 아산사회복지재단 대상 수상
2015년 10월 4일~2016년 8월 : 서울대교구 금호1가동 선교본당 주임
2016년 9월~2023년 2월 : 사단법인 삼양주민연대 이사장
2020년 9월 24일 : 대한민국 국적 취득(특별 공로)
2026년 3월 21일 : 선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