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죽을 고비를 넘었습니다. 이제 더 힘겨운 싸움을 시작해야죠."
부부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간경화로 사경을 헤매다 지난 1월 간이식 수술을 받고 다시 살아난 남편 지태규(세례자 요한, 53, 인천 부평3동본당)씨는 죽음의 문턱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내 박복례(마리아, 46)씨 역시 20년이 넘은 하반신 마비 장애와 극심한 생활고 속에서도 희망은 분명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 죽어가던 남편을 살려주신 것을 보면 하느님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 주시고 그 고통을 이겨낼 힘도 주시리라 믿어요."
수도성소를 꿈꾸던 두 부부는 가톨릭 노동 청년회(J.O.C)에서 만나 결혼했다. 아들ㆍ딸 남매가 태어났고, 그럭저럭 평범하게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그러나 곧 견디기 힘든 시련이 닥쳤다. 결혼 4년 만에 아내 박씨가 결핵성 뇌막염에 걸려 중추신경 마비 판정을 받은 것. 그때부터 박씨는 배꼽 아래 하반신 운동신경과 감각이 완전히 마비돼 대소변조차 혼자 처리할 수 없는 장애인으로 살아야 했다. 남편은 회사를 그만두고 장사를 하며 거동할 수 없는 아내를 정성으로 보살폈다.
그러나 아내를 더 잘 돌봐주고 싶은 마음에 6년전 무리하게 사업을 벌인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사업이 실패해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그나마 곧 신앙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대리운전ㆍ배달원 등 닥치는 대로 돈벌이에 나섰지만 아내 병수발에다 네 식구 생계조차 꾸리기 힘들었다. 사글세 25만원짜리 단칸방에서 한 달 생활비 10만원 남짓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온 지 몇 년째.
진료비 몇 푼이 아까워 병원 가기를 미루다 지난해 6월 결국 걸음을 옮기지 못할 정도로 고통이 심해져서야 찾은 병원에서 급성 간경화에 간암까지 겹쳐 생명이 위험하다는 선고를 받았다. 유일한 희망은 간 이식 뿐. 그러나 몇 천만원이 넘는 수술비를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너무 괴로워 그냥 죽고만 싶었다.
그래도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인지 아들 성인(사도요한, 23)씨가 선뜻 자신의 간을 떼어 주겠다고 나섰고,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과 교구 노동사목, 인천가톨릭사회복지회 등 도움으로 아들의 간 60를 이식받는 수술을 받았다.
생명은 건졌지만 앞으로 살아갈 일이 더 막막하다. 최근에야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된 두 부부가 매달 받는 생계보조금으로는 병원비와 약값 등을 감당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여기저기서 얻은 빚이 아직도 수천만원이 남아있다.
이식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남편은 앞으로 최소 1~2년 동안은 요양이 필요하고, 아들도 아직 학교를 다니며 건강을 회복 중이라 일을 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게다가 딸 은혜(요안나, 21)씨도 부모님 간호하느라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다.
박씨는 "하느님께 매달려 기도하고 응답을 구하는 수밖에 없지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