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통사고로 장애 판정을 받은 이지호씨가 군 복무 중인 큰 아들에게 온 편지를 읽고 있다.
편지에는 온통 아버지 생각 뿐이라는 아들의 애틋한 마음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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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밀가루를 풀어 소금으로 간을 맞춰 들이킨다. 목이 메어 잘 넘어가질 않는다. 이부자리에 몸을 눕히니 고등학생된 아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다. 아들 얼굴을 보듬던 팔을 이마에 올려 놓자, 참았던 눈물이 봇물처럼 터진다.
"한승아, 미안해…. 네 사랑으로 아빠가 산다…."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결국 1시간도 잠들지 못하고 다리의 통증을 껴안고 있다. 동이 튼다.
교통사고, 지체장애 5급, 가출한 아내, 술, 대인기피증 앓는 큰 아들, 하루 한끼 먹는 기초생활 수급자, 월세 13만 원의 단칸방, 그리고 …밥 대신 밀가루 탄 물….
이지호(48)씨에게 지난 세월은 고통 그 자체였다. 17년 전 택시를 몰다 교통사고로 허리를 크게 다친 이씨는 반식물인간이 됐다. 아내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남편에게 "볼 일이 있다"며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코흘리개 두 아들은 간호사들이 키워주다시피 하며 자랐다.
"더 이상 살고싶지 않았습니다. 아이들과 연탄가스도 마셔봤고, 쥐약도 입에 넣어봤습니다만 아침은 어김없이 오더라구요. 언젠가 노부부의 집에서 깨어났는데 `죽을 용기로 살라`고 하시더라구요."
다리 마비의 고통이 심해져 움직일 수 없는 이씨는 아이들의 학교 준비물 마련을 위해 사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결국 사채업자들이 들이닥쳤고, 사채업자들은 어린 자식들 앞에서 가난한 밥상을 여러번 뒤엎었다. 그 때마다 부자들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고 또 울었다.
이들은 지금 4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정부지원금으로 살아간다. 1년 넘게 월세가 밀려있다. 빚은 3000만 원이 넘는다. 설상가상으로 큰 아들이 군 복무로 집을 떠나면서 정부의 생계비 지원까지 줄었다. 파산 신청을 하려 해도 경비가 없다.
작은 아들은 교통비가 없어 두 시간을 걸어 통학한다. 아들의 한달 용돈은 3000원, 고3이지만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꾼다. 늦은 저녁, 방과후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들은 아버지 티셔츠와 자신의 교복을 빤다. 청소를 한 후엔 아버지 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잠든다.
잡초같이 자란 아들들은 아버지에게 자주 사랑을 고백한다. 한번은 작은 아들이 바닥에서 뭔가를 줍는 척하더니 아버지 볼에 쓱 뽀뽀를 했다. 그리고 멋쩍게 말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이씨 입가에 웃음이 번졌고 이불을 뒤집어 쓰곤 소리없이 껄껄 웃었다. 유일하게 그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다.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 서구종합사회복지관 함영덕 복지사는 "너무 어려운 생활에도 밝게 살아가는 모습이 눈물겹다"며 독자들에게 작은 희망의 빛을 요청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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