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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영란(왼쪽)씨 집을 찾은 홍영균(베드로) 천호동본당 빈첸시오회장이 인공투석하느라 굵어진 주씨의 팔을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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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란(세레나, 49, 서울 천호동본당)씨 왼팔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오른팔보다 두 배는 굵었기 때문이다. 부풀어오른 팔뚝 여기저기 뭉쳐 있는 혹덩어리들이 흉측해 보였다. 인공투석을 하느라 8년째 일주일에 사흘, 하루 꼬박 4시간씩 주사바늘을 꽂아온 탓이다.
"투석하고 나면 너무 힘들어서 하루 종일 누워 있어야 해요. 2007년에는 뇌경색으로 쓰러져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만성신부전증 환자인 주씨가 인공투석을 멈추기 위해서는 신장이식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려면 수술비가 최소한 2000만 원은 필요하다. 하지만 주씨 형편으로는 꿈도 못꿀 돈이다.
문제는 주씨만이 아니다. 남편도 간이 조금씩 굳어가는 간경화 환자다. 배에 차오른 복수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며칠 전에는 처음으로 복수를 빼냈다. 앞으로 주기적으로 복수를 빼내야 한다.
몸이 성치 않은 환자임에도 남편은 두부공장으로 일을 나간다. 일을 하지 않으면 온 가족이 당장 굶을 판이다.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경기도 남양주 공장으로 새벽길을 재촉하는 남편을 배웅할 때마다 주씨는 가슴이 미어진다. 모든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편히 쉬어도 시원찮은데, 병든 아내 때문에 쉬지도 못하는 남편이 한없이 고맙고 미안할 뿐이다.
주씨는 "병원에서 남편에게 당장 입원하라고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면서 "간이 점점 나빠져가는 상황을 손을 놓고 지켜만 봐야 하는 현실이 원망스럽다"며 눈물을 훔쳤다.
부부에게는 하나뿐인 아들이 잘 자라준 것이 가장 큰 위안이다. 지난 3월 모 대학 체육학과 수석으로 입학해 장학금을 받은 대학생 아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어 쓴다. 편찮은 부모를 보면서 자라나 속이 깊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 반 지하방에 사는 주씨네 수입은 매달 남편이 벌어오는 100만 원 남짓과 주씨가 국가로부터 받는 장애수당 및 기초생활보호수당 20만 원을 합한 120여 만원이 전부다. 세 식구 입에 풀칠하기에도 버겁다.
주씨의 소원은 남편을 입원시켜 편히 쉬게 하는 것이다. 주씨는 남편의 건강과 아들의 무사무탈을 위해 매일 묵주기도를 바친다. "내가 모든 죄를 짊어질테니 남편이 건강해지고 아들이 잘 자랄 수만 있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매달린다. 아내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남편과 아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라도 감수하겠다는 주씨의 간절한 마음이다. 자신의 병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주씨가 너무나 안쓰러웠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