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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희 할머니가 딸과 두 손자와 함께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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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계동 산자락에 있는 무허가 주택가. 각목을 뼈대 삼아 합판, 비닐, 종이상자 등으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집에서 이순희(가타리나, 64)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온다. 2년 전 수술 받은 위암이 임파선으로 전이되고 휘어진 척추뼈가 신경을 눌러 거동도 힘들지만 폐지라도 주울 요량으로 집을 나선 것이다.
성한 데가 없는 몸으로 경사가 급한 산길을 내려올 때마다 온몸에 고통이 밀려오지만 아픈 가족들을 생각하면 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혼도 못한 채 마흔을 훌쩍 넘긴 그의 아들은 신부전증으로 직장도 그만두고 병원과 집만 오가는 상태. 신장 투석을 하면서 몸무게가 40㎏을 가까스로 넘길 정도로 쇠약해졌다.
이 할머니와 함께 사는 딸 역시 결핵을 앓아 일을 할 수 없는 형편이다. 가족의 유일한 수입은 사위가 막노동으로 벌어오는 얼마 안 되는 돈이 전부다. 너무 무리해서일까, 집안의 가장인 사위도 위에 구멍이 뚫려 두 달간 일을 못해 없는 살림에 빚만 눈덩이처럼 늘고 있다.
폐지를 줍고 있는 이 할머니를 보고 놀이터에서 놀던 외손자 인성(7)이가 반갑게 달려온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를 바라보는 이 할머니의 표정이 어둡다. 인성이는 겉으로는 건강하게 보이지만 척추에 난 혹이 신경을 눌러 수술이 시급하다. 너무 어리기도 하지만 600만 원이 넘는 비용에 수술은 꿈도 못 꾸고 있다.
"수술이 늦으면 하반신이 마비된다는데…."
손자 손을 잡은 이 할머니 목소리가 떨린다. 이 할머니 본인과 아들, 딸, 손자까지 집안 전체가 환자뿐이다. 얼마 전 병원에 다녀온 아들이 "의사가 보호자 데려오라고 한다"는 말을 전하면서 시름이 더욱 깊어졌다.
손자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길, 상계동본당 신자들이 이 할머니를 방문했다. 집안에 들어서자 차고 습한 기운이 뼛속까지 전해진다. 몇 달 전, 지네가 집안에다 알을 낳아 온통 지네 투성이다. 이 할머니도 지네에 물려 두 달 넘게 고생을 했고, 어린 손자들이 물릴까 밤에는 불침번을 서야 했다.
그래도 가장 큰 걱정은 재개발 때문에 무허가 집에서 쫓겨나는 것이다. 그 생각만 하면 눈앞이 깜깜해진다.
"50년 넘게 여기에 살면서 얘들을 키웠는데 갈 곳이 없어요." 이 할머니가 할 수 있는 건 폐지를 줍는 것과 기도하며 주님께 매달리는 게 전부다.
상계동본당 나눔의 묵상회 회원 안금순(데레사)씨는 "본당 관할에 어려운 분들이 많은데 이렇게 어려운 집은 처음"이라며 "이 가정에 희망을 전해줄 분들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