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로 집 나간 남편 소식 몰라 현재 보증금 500만 원 월셋집살이 딸 돌보느라 일 제대로 하지 못해
"어.. 음.. 마.."
작은 체구의 최은서(7)양은 "엄마"란 단어조차 발음하기 힘들어한다. 말보다 손짓이 먼저 나온다.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며 말하지만 답답함에 이내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다.
은서가 5살 때 발견된 병명은 조음(말소리 생성)장애. 인지력과는 상관없이 말할 때 내뱉는 호흡이 약할뿐만 아니라, 잇몸 기형을 동반하고 있어 단어 몇 개만 구사할 뿐이다. 인근 복지관에서 도움을 받아 언어치료를 받고 있지만 언제 나아질 지는 아무도 모른다. 엄마 이선미(38)씨는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간 지 오래다.
의사소통만 힘든 게 아니다. 은서는 태어날 때부터 양쪽 발이 안으로 휜 안짱다리다. 그동안 8번이나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밤마다 발 모양을 잡아주는 보조기구에 의지해야 한다.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는데, 교육비는 커녕 생활비도 없는 터라 엄마 이씨 한숨은 끊일 날이 없다. 요즘 사춘기를 겪고 있는 은서 언니(13)는 동생을 돌보려 하지도 않는다. 모든 짐은 이씨 혼자 지고 있다.
은서가 아빠를 못 본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전에 살던 집에서 밀린 월세 때문에 갖은 욕은 다 듣고 쫓겨나올 때도 아빠는 없었다. 현재 사는 서울 중랑구 중화동 반지하 집으로 이사한 후 고작 두 번 들렀을 뿐이다. 생활비가 바닥나 전전긍긍해도 몇 년 전부터 밖으로만 나다니는 남편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다.
"보고 싶지도 않아요. 어디선가 술 먹고 다니다가 아이들이 생각나면 한 번씩 왔다가 홀연히 가버리죠. 주변에선 정부지원도 못 받고 사느니 차라리 헤어지라고 하더라고요."
덤덤한 표정의 이씨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보증금 500만 원 집으로 이사한 것도 시립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을 통해 소개받았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벌이가 시원찮아 월세 10만 원도 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씨는 그동안 액세서리 만들기, 청소 등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 하지만 은서가 어린이 집에 오고 갈 때마다 마중을 가다 보니 직장에선 두세 달만 지나면 눈치를 줬다.
"제 사정을 알아도 일터에선 가차 없죠. 사정을 봐주지 않아요."
이씨는 너무 속상한 마음에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 친정집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 보조금으로 겨우 지내는 노부모가 도와줄 방법은 없었다.
잘 불어지지 않는 호루라기로 엄마 옆에서 호흡 내뱉기 연습을 하는 은서 소원은 힘차게 "엄마"라고 외쳐보는 것이다. 이씨 소원도 다르지 않다. 은서가 얼른 더 좋은 치료를 받아 "엄마 사랑해"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이씨는 "은서가 더 나은 치료를 받고 완쾌해 온 가족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