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라 엘리자베타 성녀는 이탈리아의 손치노에서 귀족 출신 부모의 16명 자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성녀는 11살까지 집에 머물다 베르가모에 있는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몸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 가고 나서는 집을 떠난 외로움으로 큰 고통을 겪었는데, 이 경험은 성녀가 하느님만을 의지하며 사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19살에는 이미 성녀에 대한 결혼 계획이 마련돼 있었습니다. 아내를 잃은 59살의 가예타노 부세키 백작이 그 대상입니다. 성녀는 이를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19년의 결혼 생활 가운데 말년은 성녀에게 고통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3명의 자녀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데다 하나 남은 아들 카를로 또한 16살에 숨을 거뒀기 때문입니다. 심한 병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카를로는 성녀에게 “어머니, 울지 마세요. 하느님께서 다른 아이들을 주실 거예요”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그해가 끝날 무렵 12월 25일에는 남편마저 목숨을 잃었습니다.
큰 시련을 겪은 성녀에게 카를로가 남긴 말은 계속해서 그의 영혼을 울렸습니다. 성녀는 카를로에게 했던 것처럼 모성으로 다른 이에게 자신을 내어주고 싶었습니다. 성녀는 병든 이들을 찾아 돕고, 가난한 이와 고아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고아들의 두려움에 젖은 눈은 집에도 그들을 받아들이게 했습니다. 성녀의 가문과 이웃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녀는 자신의 보석까지 팔아 고아원을 위한 물품을 구매했고, 하느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봉헌하기 위해 1856년 영속적인 정결 서원을 하고 얼마 뒤, 가난과 순명의 서원을 했습니다.
다른 젊은 여성들 또한 성녀와 함께하기를 소망했습니다. 성녀는 1857년 이탈리아의 코몬테에서 성가정 수녀회를 설립하였고, 바울라 엘리자베타라는 수도명을 선택했습니다. 성녀가 설립한 수녀회의 이념은 나자렛 성가정에서 찾을 수 있는 겸손과 단순함, 가난과 사랑을 영성의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성녀는 남성들을 위해서도 이와 같은 이념을 가진 성가정 수도회를 설립했습니다. 성녀는 고아들을 ‘성 요셉의 아들과 딸들’로 부르며 보살폈습니다. 특히, 부모 없는 아이들의 교육과 가난의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모성은 끝이 없었고, 수사와 수녀 양성 중요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도자들의 보살핌에 놓인 하느님의 자녀를 한 명이라도 방치하거나 잃지 않고 사랑으로써 교육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성녀는 49살의 나이로 코몬테의 수녀원에서 갑자기 선종하였습니다. 1950년 성 요셉 대축일에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2004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