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토 성인의 쌍둥이 동생인 스콜라스티카 성녀는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성녀는 베네딕토 성인이 수비아코의 한 동굴에서 은수자로 생활할 때 오빠처럼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할 것을 결심했고, 여러 귀족 청년들의 청혼을 모두 거절했습니다. 성녀는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자기 몫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준 뒤 몬테카시노와 멀지 않은 곳에 초막을 짓고 은수생활을 했습니다. 그곳에는 점차 성녀와 같이 생활하려는 이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당시 성녀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베네딕토 성인을 만나 기도생활에 대한 도움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성 그레고리우스 1세 대교황이 쓴 「이탈리아 교부들의 생활과 기적에 관한 대화집」 제33장에 따르면 베네딕토 성인은 피우마롤라에 베네딕도 수녀원을 설립하고 나서 성녀에게 맡겼습니다. 그래서 성녀는 베네딕도수녀회의 첫 번째 수녀이자 원장입니다.
마찬가지로 성 그레고리우스 1세 대교황의 「대화집」에는 이들 남매의 유명한 일화가 담겨 있습니다. 성녀가 마지막으로 베네딕토 성인을 만났을 때 그들은 늘 하던 대로 함께 기도하고 영적 담화를 나누었습니다. 밤이 되자 성녀는 오빠에게 다음 날 아침까지 같이 있기를 간청했으나, 베네딕토 성인은 수도회 규칙에 충실해야 한다며 거절했습니다. 성녀가 눈물을 흘리며 잠시 기도를 하자 곧 세찬 비바람이 불었고, 베네딕토 성인과 수도승들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할 수 없이 머물게 된 베네딕토 성인은 “누이야,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너의 뜻을 허락하셨구나. 대체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고, 성녀는 “오빠는 제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지만, 주님께서는 들으셨습니다. 자, 이제 수도원으로 돌아가 보시지요.”하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남매는 밤새 영적인 생활의 기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 만남을 끝으로 3일 뒤 성녀는 선종하였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이날 수도원에서 기도하다가 창밖으로 동생이 있는 수녀원에서 하얀 비둘기 한 마리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동생이 하느님 품으로 갔음을 알게 됐습니다. 성녀는 베네딕도수녀회의 수호 성녀로 공경받고 있으며, 비둘기는 성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