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7~1297년, 이탈리아 출생, 통회자, 작은 형제회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그러던 어느 날 성녀는 다가온 개 한 마리가 그의
옷을 물고 잡아당기는 바람에 숲 속의 한 밤나무 밑으로 이끌려갔습니다. 그곳에는
무참히 살해된 연인의 시체가 있었습니다. 성녀는 이미 부패하기 시작한 처참한 모습의
연인을 보자마자 하느님의 심판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는 몬테 풀치아노를 떠나
통회와 보속의 생활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고행의 옷을 입은 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으나, 새어머니에게 이내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절망 상태에 다다랐을 때 성녀는 코르토나의 작은 형제회 성당에 들어가 통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해성사를 받고 인근에 있는 작은 집 한 칸을 얻어 고행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성녀는 성당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통회하며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또한, 더 철저한 통회를 위해서 작은 형제회의 3회원이 되려고
하였으나, 성녀의 과거 때문에 입회 허가는 쉽게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년의
통회를 거친 성녀는 진심을 인정받고 1277년 비로소 입회가 허락되어 철저한 보속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성녀의 열성이 증가할수록 사탄의 유혹과 방해 또한 커졌습니다. 사탄은 성녀의 통회를 방해하며 지난날의 욕정을 불러일으키려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와 고행이 무가치함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성녀가 유혹을 이겨낼 수 있도록 따뜻이 안아주었습니다. 또 신을 인식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은혜와 다른 이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은총을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은 성녀를 보고 하느님의 권능을 향한 찬미 노래를 봉헌했습니다. 성녀는 통회 생활을 한 지 23년째 되던 해의 2월 22일, 50세의 나이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성녀는 ‘작은 형제회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로도 불렸습니다. 그 후 성녀의 시신은 그에게 봉헌된 코르토나의 성녀 마르가리타 성당에 안장되었는데, 신비하게도 그의 유해에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녀의 무덤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치유의 기적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성녀는 1728년 5월 베네딕토 13세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