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것은 가치 있는 일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자신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윤리적 삶을 산다는 것은 이 세상의 온갖 고통에 연민을 느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자 애쓴 위대한 전통에 참여하는 것이니까요.”(피터 싱어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 “출동, 메추리 오남매!”
‘메추리 오남매’를 아시나요? ‘독수리 오형제’를 패러디한 유튜브 히어로(영웅)들입니다. 메추리, 청두루미, 직박구리, 찌르레기, 큰부리까마귀라는 이름의 주인공들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출동합니다. 롯데 월드 아이스링크장, 구로1동 신형상가, 봉천동 K마트 사거리 뒷골목 등지에서 악당들을 물리칩니다.
그런데 작품은 악에 대한 시원한 응징보다 히어로들의 현실적 어려움과 고민에 초점을 맞춥니다. 월드컵 경기를 보는 도중에 출동해야 하고, 출동한 현장에서는 입장료를 내야 합니다. 게다가 주인공과 악당들 모두 생활고에 시달립니다. 메추리 오남매도 월세를 못내 시청 지원금이나 광고협찬으로 생활을 간신히 이어갑니다. 악당들도 월세조차 못 낼 형편이라 대리운전, 막노동, 주점 알바, 택시운전,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근이 일을 합니다.
■ 인격적 존재의 품격
그 와중에 프로의식이나 도덕적 면모가 묻어납니다. 임무 중 부상을 당하지만 공금 사용이 다른 동료들에게 미안해서 치료비 일부를 자신이 부담합니다. 자금난으로 해체 위기가 닥치지만 교대로 일을 해서 돈을 벌어 보자고 합니다. 크리스마스 파티 제안에 “우리가 안전하면 시민들이 위험하고 우리가 위험하면 시민들이 안전하다!”는 뭉클한 말도 합니다. 딱히 악해 보이지도 않는 악당들도 서로의 안위를 걱정해 주고, 부하들의 헌신에 악당 두목은 감격해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작품은 곤궁한 이웃들의 처지를 통해 서로를 위한 마음, 놀라운 사명감, 도덕의식이 지금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것임을 역설합니다. 그 속에는 선과 악이라는 상투적 구분이 아니라 인격적 존재의 품격이 녹아 있습니다.
■ 선함의 신비
누구나 자유로운 선택을 하며 삽니다. 그런데 역경 속에서 선함과 도덕, 이웃사랑을 선택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선택은 사회에 선한 영향을 미치며 그 자신도 성장해 갑니다. 윤리와 도덕, 하느님의 진리가 그 선택의 바탕이기 때문이며, 그 선택이 사람과 세상을 이롭게 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135~138항)
그 옛날 헤로데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악행도 서슴지 않았듯 역사는 탐욕을 위해 자행된 반복되는 불의를 증언합니다. 권력을 위해 결탁했으나 결국 진흙탕 싸움이나 벌이고, 불의한 돈에 기대고, 선량한 사람들을 기만한 사실들을 증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빛이 어둠을 이기듯, 하느님의 선함도 불의함을 넘어선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념이나 체제를 불문하고 조직이나 계층 간의 불신, 갈등 구조가 생겨나고 증오와 대립, 싸움이 일어나는 대표적 요인이 힘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부자와 빈자, 양 계층 간의 격차를 해소할 수 없는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힘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존중하며 부유한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가난한 소외계층을 위한 배려와 봉사, 나눔과 기부 문화 등을 활성화하는 따뜻하고 예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안성기, 2023년 제4회 4·19 민주평화상 시상식 수상소감 중)
이주형 요한 세례자 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