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우리를 어둠에서 빛으로 이끌어 내 주십니다.”
시골 본당에 있을 때 평일미사에 나오는 신자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제가 강론하는 것보다 나눔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복음을 읽고 나서 신자들에게 “복음 묵상을 나누셔도 되고, 힘드신 분들은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읽어만 주셔도 좋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부분은 편하게 생각을 나눠주셨는데요. 두 분은 죽어도 안 하시려고 했습니다. 나눔이 어려우면 와 닿는 말씀을 반복해도 될 텐데 그것도 안 하시겠다고 버티셨습니다. 그래서 나눔을 마무리하고 미사를 계속 봉헌했는데요.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배우기도 하고, 다시 선포된 말씀을 마음에 새겨 보면 유익할 텐데, 따라 주지 않으시는 모습에 마음이 살짝 의기소침해졌습니다.
그 일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신자들을 위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었는데요. 신자들이 함께해 주지 않아서 서운하기도 하고, 일의 무게 때문에 조금 힘들어서 그만해야겠다는 핑계를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자들을 다 보내고 난 뒤에 수단을 입고 시골길을 한참 걸었습니다. 그렇게 걸으니까 신학교에서 마침 기도 끝나고 고민하며 산책하던 생각도 나고, 그 몇 주 전에 수녀님들이 오셔서 ‘여기 관상 수도회가 들어오면 참 좋겠네’ 하셨던 말씀도 생각났습니다. 엄청 조용하거든요.
그렇게 산책을 하면서 처음에 들었던 생각은 ‘신자들이 별로 호응이 없는데 나도 놀 수 있다는 걸 보여 줄까, 다른 일들 신경 안 쓰고 편히 살아 볼까’ 하는 건데요. 바로 ‘그건 아니지. 아직도 마음을 다 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또 대답을 했습니다. 그렇게 혼자 독백하고, 지나가는 생각들과 대화하면서 산책을 계속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얼마나 더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왜 해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들이 올라왔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걷는데 예전에 ‘섬김’이라는 단어를 묵상했던 것이 떠오르더라고요. ‘섬김’이 줄임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두 가지입니다. 처음에 들었던 생각은 ‘섬에 사는 김 신부’이고요. 다른 하나는 ‘섬기는 삶을 살아라, 김 신부’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전 생애가 섬기는 삶이었다는 내용들이 죽 지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편하고자 하셨다면 늘 찬미와 순종이 있는 천사들을 택하셨겠지만 그렇지 않으셨죠. 예수님께서는 불편한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우리와 같이 말도 잘 안 듣고, 이해도 못 하고, 배신하고, 도망가 버리는 그런 제자들을 선택하시어 그들이 변화될 때까지 그들을 섬기셨습니다. 부르시고, 그들이 들을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해 주시고, 발을 씻겨주시고,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런 평생의 섬김이 제자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는데요. 그런 모습을 떠올리면서 ‘섬기는 삶, 평생 섬기는 삶, 예수님도 평생 섬기는 삶을 사셨는데’ 하는 말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방에 들어와서 컴퓨터를 켰습니다. 당시에 노래 듣는 취미가 생겨서 인터넷을 켜고 노래를 검색했습니다. 그날은 성가가 듣고 싶어서 가톨릭 부분에 들어가서 한 번씩 들어 보고 다운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제 마음에 울림을 주는 성가가 있었습니다. 이용현 신부님의 ‘늘 그렇게’라는 성가인데요. 가사가 이렇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여
늘 그렇게 맑은 눈빛으로
늘 그렇게 밝은 웃음으로
늘 그렇게 넓은 가슴으로
늘 그렇게 사랑하길 나는 기도하네
사랑하는 친구여
늘 그렇게 그분의 눈빛이
늘 그렇게 그분의 숨결이
늘 그렇게 그분의 사랑이
늘 그렇게 내게 머물길 나는 기도하네
지나간 시간들의 아쉬움과
다가올 시간들의 설레임 모두
우리가 늘 그렇게
그분과 함께 살아간다면
세상엔 그 모든 것들은
사랑으로 채울 수 있을 거라네
늘 그렇게 늘 그렇게 늘 그렇게
마치 누군가 의기소침해 있는 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인 듯했습니다. 그래서 한참을 듣고 또 반복해서 들으며, ‘그래, 늘 그렇게,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야겠지’ 하는 마음과 열의가 생겼습니다.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1베드 2,9)
이 말씀대로 주님께서는 의기소침함이라는 어둠에 있던 저를 밝은 빛으로 이끌어내 주시어,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선포하게 하시고, 당신의 일을 계속할 힘을 주십니다.
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