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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닮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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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본당에 있을 때, ‘성모상 봉헌 받는다’는 공지를 주보에 올렸었습니다. 그 공지를 보고 선배 신부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본당에 성모상이 있는데, 생각 있으면 가져가라”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날짜를 잡고 그 본당에 갔는데요. 몇몇 신자 분들이 마당에 계셨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섬에 있다고 소개를 하니까, 바로 이런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혹시 누구누구 조카 신부님 아니세요?’ 그 본당에 저희 이모가 사시는데, 아마도 “조카 신부가 섬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신 것 같습니다. 맞다고 하니, 자매님들이 “어머 어머 똑같이 생겼네. 그 집 아들들 하고 똑같아” 하고 서로 좋아하십니다. 이모 아들이 둘 있는데 자매님들이 보시기에 저와 많이 닮았나 봅니다. 한참을 신기하게 보셨는데요. 그런 닮음이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도 존재합니다. 창세기 1장 26-27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창조주이신 하느님이 만든 작품인 사람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하느님의 흔적과 자취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와 비슷한 경우입니다. ‘네모’라는 화가가 그림을 그린다면, 그 그림에서 네모라는 생각과 느낌과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세모’라는 화가가 그림을 그린다면, 그가 그린 그림에서도 마찬가지로 세모라는 생각과 느낌과 특징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 특별히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 만드신 사람들을 잘 들여다보면, 하느님의 흔적과 자취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그 구체적인 흔적에 대해서 생각해 보다가 이런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두 남녀가 산책하는데, 갑자기 비가 오는 겁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우산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둘은 팔짱을 끼고 하나의 우산을 쓰고 걸어갑니다. 그 모습을 보면, 우산 안의 ‘나’인 남자와 ‘너’인 여자가 사랑으로 하나 된 느낌이 듭니다. 그 모습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흔적인 것 같습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도 ‘나’인 하느님과 ‘너’인 예수님이 계시고, 그 두 분을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세 하느님은 서로에 대한 간격이 전혀 없을 정도로 가깝고 친밀하십니다. 세 분 하느님이시지만, 한 하느님이라고 부릅니다.

그 모습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습이고, 닮아야 할 모습일 텐데요. 그 모습을 닮아가기 위해서 크게 세 가지 노력을 할 수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우산 안의 두 남녀가 다른 곳을 보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서로 갈라진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죠. 같은 곳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사랑으로 일치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방향이 우리 신앙인에게는 바로 하느님일 겁니다.

두 번째는 상대방을 용서하기로 결심하는 겁니다. 우산 안의 두 남녀가 서로 다투어, 둘 중 하나가 우산 밖으로 나와 있다면 일치된 모습이 아니겠죠. 둘이 사랑으로 하나 되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이 상대방을 용서하기로 결심하고, 상대방을 우산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으로 일치된 모습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세 번째는 나를 낮추고 희생하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염소 두 마리가 좁은 오솔길 양쪽에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한 마리는 내려오는 길이고, 다른 한 마리는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드디어 두 염소는 한 지점에서 딱 마주쳤습니다. 무슨 수를 쓰지 않고는 아무도 지나갈 수 없었습니다. 잠시 상대편을 쳐다보던 염소들은 머리를 낮췄습니다. 언뜻 보면 서로 돌진할 태세를 갖추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올라가던 염소가 길바닥에 납작 엎드렸던 것입니다. 내려오던 염소는 가볍게 그 등을 타고 넘어갔습니다. 이어서 몸을 숙였던 염소가 일어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정상에 이르기 위해서는 때로 그 염소처럼 자존심을 꺾고 내키지 않는 일도 감수해야 하는 섬김이 필요합니다.

저도 신자들과의 관계 안에서 어려워하는 게 있었습니다. 신자들과 사진 찍을 때 웃는 겁니다. 사진기를 들이댔을 때 갑자기 빵긋하는 것이 영 어색했는데요.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자들에게 기쁨이 되고 기념이 될 만한 날인데, 그분들을 위해서 웃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는 것도 하나의 섬김이 될 수 있겠다.’ 그 이후로는 어색하지만, 웃는 모습이 사진에 나올 수 있도록 많이 노력했었습니다.

두 남녀가 우산을 쓰고 갈 때도 마찬가지겠죠. 작은 우산을 같이 쓰는데, 남자가 여자에게 우산을 더 많이 씌워 주고 자신은 비를 더 맞는 겁니다. 여자가 그 모습을 보고 ‘아, 이 사람은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소중한 것도 내어놓으리라 생각합니다. 서로 희생하고 내어주는 모습에서, 사랑으로 하나 된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 나와 함께하는 그 누군가와 사랑으로 하나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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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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