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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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연중 제11주일 - 참된 길 보여주신 주님을 만난 것은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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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와 단련이 필요한 우리의 성소 여정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선발하시는 장면을 묵상할 때마다, 자연스레 제 성소 여정을 생각하게 되고, 돈보스코의 수도 성소로 불러주신 주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사도로 불림 받은 열두 제자가 그랬듯이, 저 역시 너무나 부족한 사람, 수도 성소의 삶을 살아가기에는 천부당만부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참으로 묘하신 분. 도망가도 도망가도 끝까지 따라오셔서 저를 부르시더군요. 그리고 낚아채시더군요.

다행히도 주님께서는 부르심에 합당하지 않은 저, 특별한 성소의 삶을 살아가기에 미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저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한 가지 쉽지 않은 작업을 행하셨습니다. 그 작업은 바로 정화(淨化) 작업이었습니다.

볼품없는 고철(古鐵)을 재활용하기 위해 뜨거운 용광로에 집어넣듯이, 주님께서는 저를 당신 뜨거운 사랑의 용광로 속으로 밀어 넣으셨습니다. 원치도 않았는데, 깊은 바닥 체험을 시키셨습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고통과 십자가의 현장으로 저를 안내하셨습니다. 쓸모없는 곁가지를 말끔히 쳐내게 하시고, 쓸데없는 사심(私心)과 교만함을 버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갈라짐 없는 순수한 마음을 지니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한 주님 측의 정화와 단련, 쇄신과 정제 작업은 오늘도 우리들 모두의 성소 여정 안에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성소 여정을 천천히 돌아보니 참으로 미성숙한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어려운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선택에서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인간적 야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응답하는 자세에 있어서의 순수성, 올곧은 마음이 한없이 부족했습니다.

은혜롭게도 자비하신 주님께서는 부족한 우리, 나약한 우리, 미처 준비되지 않은 우리를 그냥 쓰시지 않고, 당신의 합당한 도구로 쓰시기 위해 우리를 단련시키십니다. 거친 황야로 내모십니다. 원치도 않은 시련을 겪게 하십니다. 오랜 거듭남의 과정을 통해 우리를 정화시키십니다.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생명에로의 부르심, 세례성사와 견진성사에로의 부르심, 결혼에로의 부르심, 사제나 수도자, 혹은 평신도에로의 부르심, 오늘이라는 선물에로의 부르심, 봉사직에로의 부르심, 리더에로의 부르심, 병고에로의 부르심, 죽음에로의 부르심…. 주님께서는 어제도 우리를 부르셨듯이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때로 큰 사건 사고를 통해서도 우리를 부르시고, 때로 한 인간 존재를 통해서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모든 부르심 앞에 보다 합당한 응답의 태도는 어떤 것인지를 고민해야겠습니다. 매일 매 순간 다가오는 주님의 부르심에 보다 순수하게, 보다 올곧게 응답하기 위해, 더욱 우리 자신을 정화시키고 쇄신시켜 나가야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참 스승을 만난 행운아들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다양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여러 유형의 축복 가운데, 제가 참으로 감사드리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 축복은 내 좁은 안목을 넓혀주신 스승을 만나게 된 축복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디 그런 스승 만나기가 쉬운가요? 아무리 애를 써도, 사방을 둘러봐도, 그런 스승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런 분들께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스승은 사방에 널려있습니다. 비록 시대의 간극으로 인해 그분을 직접 만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분의 말과 생각, 인생 전체가 담긴 책들이 있지 않습니까? 좋은 책 한 권을 만나는 것은 어찌 보면 좋은 스승 한 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참 인간의 길, 참 삶의 길이 무엇인지 지식이나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 온몸으로 보여주신 스승, 부족하고 덜떨어진 나를 더 넓은 바다로, 더 광대한 지평으로 친절하게 안내해주신 스승, 인생에 있어서 보다 가치 있는 대상, 보다 소중한 영역들이 무엇인지 일깨워준 스승….

여러 축복 가운데 그런 스승을 만난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오늘 예수님으로부터 친히 제자로 불림 받은 열두 사도들은 행운아 중의 행운아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스승 중의 스승,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났습니다. 그것도 스스로 찾아가서 만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열두 사도들, 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재수 좋은 사람들, 가장 복 받은 사람들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제자들의 삶, 한마디로 별 볼 일 없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무미건조했고 퀴퀴한 냄새가 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답답한 새장 안에 갇혀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 인생, 꼬여도 어찌 이리 꼬였나?’ 하며 힘겨워하고 있었습니다. 뭔가 돌파구를 찾기 위해 기를 쓰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먼저 다가가십니다. 그들의 삶을 한바탕 흔들어놓으십니다. 갑작스럽게 맞이한 일종의 혼돈 상태 앞에서 제자들은 어리둥절했겠지요. 그러나 제자들은 스승님과의 만남으로 인해 시작된 ‘깊고 심오한 삶의 이동’을 통해 참으로 흥미진진하고 의미 있는 인생의 후반부로 나아가게 됩니다. 인생의 전반전과는 사뭇 양상이 다른 인생의 오후입니다. 자기 자신과 세상, 하느님의 정렬 상태가 전반전과는 크게 달라진 인생의 후반부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 역시 열두 제자 못지않은 행운아들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일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의 창조주요 구원자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시금 스승 중의 스승, 참 스승이신 예수님을 만난 것에 깊이 감사드리며, 열두 사도들처럼 그분께서 남기신 어록들, 일거수일투족을 있는 그대로 추종하는 우리가 되고자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살레시오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3-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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