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
살아가다 보면 막연한 동경으로 무언가를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골의 삶을 생각해 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나중에 노후에는 시골에 내려가서 여유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텃밭에서 나오는 거 조금 먹고, 방을 몇 개 더 마련해서 주말에 손님들 조금씩 받으며 살아가면 되겠지.’ 하는 겁니다. 시골에만 내려가면 여유가 많을 거 같고, 펜션 하는 일이 노년에 할 수 있는 만만한 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살아 보면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걸 느낄 겁니다. 처음 얼마간은 여유를 느끼겠지만 시골의 일이라는 것이 끝이 없습니다. 밭에서 풀 나면 매기 시작해야 하고, 웬만한 수리들은 사람을 쓰기 힘들어서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수입을 생각해서 펜션을 했다면, 주말에 손님을 받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것이 노년에 할 수 있는 만만한 일이 아님을 느낍니다.
멀리서 볼 때는 어떤 막연한 동경이 있었는데 가까이서 살아 보면 그렇지 않은 것들을 보게 되고 환상이 깨지는 시기가 있을 텐데요. 여러 가지가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유학을 다녀온 신부님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외국 유학에 대한 어떤 동경이나 로망이 있는 거 같은데, 실제로 살아 보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거기서도 그저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라고 말합니다.
부부들도 마찬가지죠. 결혼하기 전에는 많은 환상을 가집니다. 결혼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만 같습니다. 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라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펼쳐질 거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음을 느낍니다.
여행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행을 가면 대단한 무언가를 볼 것 같은데요. 막상 가 보면 생각했던 그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내가 막연하게 그리던 것과는 다른 삶. 그런 상황을 마주하게 됐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나요? C.S. 루이스가 쓴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사람 중에 ‘어리석은 부류에 해당하는 사람’은 세상에 나의 갈망을 채워줄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 또 다른 것을 찾아 나서고자 합니다. 예를 들면 한 여자에게 만족하지 못한다면 다른 여자를 찾게 됩니다. 이번에 간 여행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면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하는 겁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죠. 이 책을 읽고 채워지지 않은 것을 또 다른 책으로 채워 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갈망을 해소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거듭되는 실망과 허탈함, 뭔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아쉬움을 더 느끼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마 그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느님 외에 그 갈망을 채워줄 수 있는 분이 없음을 깨닫는 사람일 겁니다. “나는 싱싱한 방백나무 같으니, 너희는 나에게서 열매를 얻으리라.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호세 14,9-10)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 느껴질 때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뭔가 있으려니 하며 헛된 기대를 품기보다, 하느님 안에서 충만함을 찾을 수 있으시면 좋겠습니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예전에 길게 피정하면서 많은 영적인 선물들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외부와 단절하고 쉬자’라는 마음이 있었는데요. 기도를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발견하게 되는 작은 선물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내 영혼이 얼마나 주님을 목말라했었는지를 조금 느꼈습니다. 처음 주어진 말씀이 시편이었는데, 그 중간 구절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제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나이다’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다시 읽는데 또 주르륵. 그래서 그 말씀을 가지고 기도했는데, 아마도 당시에 제가 아주 영적으로 메말라있었고, 그 영혼의 목마름이 말씀으로 건드려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에게서나 장소에서가 아니라, 주님 안에서 해답을 찾아야 함을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진정한 쉼이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된 겁니다. 피정 중에 일과는 아주 단순합니다. 기도하고 밥 먹고 운동하고 기도합니다. 아주 단순한 일과가 반복되는데요. 그중에 점심에 하는 것이 가벼운 등산입니다. 나무로 둘러싸인 길을 1~2시간 정도 조용히 걷고, 내려와서 커피 믹스 한 잔에 과자 한 조각을 먹는데요. 그 과정에서 보는 것이 소박하게 아름답습니다. 시내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나무 사이로 햇살이 비추고,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리고, 하늘은 맑고 푸릅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이것이 진정한 쉼이구나!”라는 말이 저도 모르게 나옵니다. 그 편안한 쉼을 위해 필요한 것도 많지 않습니다. 커피 한 잔과 과자 하나면 됩니다. 그렇게 기도하며 자연 안에 조용히 머무는 그 순간이 참 소박하게 평화롭고, 진정한 쉼을 체험하게 했었습니다.
세 번째는 집착하고 비교하던 것을 내려놓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이 나에게 어떠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교하며 서운한 마음을 갖기도 했죠. 그런데 하루는 산에서 내려오는데 그 쥐고 있던 생각들이 아무 이유 없이 놓아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바라던 생각이나,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집착하는 것들이 없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 편하고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미소를 지으며 펄쩍펄쩍 뛰어 내려왔습니다.
주님을 향하고, 쉼을 체험하고, 집착을 내려놓는 순간들이 저에게는 작은 선물이었고, 또 주님 안에서 발견한 작은 보물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체험들 가운데 그 ‘밭에 숨겨진 보물’에 관한 말씀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복음에 나오는 그 사람처럼 ‘가진 것을 다 팔아’라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 강한 끌림이 있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발견하고 체험한 선물들을 얻기 위해서라면, 내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내가 잠시 쥐고 있는 것보다 그분이 주시는 것이 얼마나 풍요롭고 진정한 것인지를 반짝하고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