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얘들아! 사랑이 뭘까?
베드로: 신부님, 우리 엄마는요, 맨날 맛있는 걸 많이 해 주세요! 그게 사랑이죠!
스텔라: 우리 아빠는 맨날 안아 주고 뽀뽀해 주세요! 그게 너무 좋아요!
마리아: 우리 가족은요, 맨날 하트 모양의 인사를 나눠요!
■ 올바른 사랑이란
간혹 어린이들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사랑은 표현돼야 한다고 하죠? 일상의 다양한 사랑 표현은 삶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저는 간혹 아이들에게 이렇게 얘기를 해 줍니다. “얘들아, 사랑은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행동이나 표현을 통해 드러난단다. 사랑을 통해 따스함을 느끼고 편안해지고 감동과 선함이 밀려오지! 하느님께서도 비록 눈에 보이시지 않지만 사랑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을 체험하고 느낀단다!”
이런 이야기를 해 주는 이유는 아이들로 하여금 사랑의 참된 의미를 알게 해 주기 위함이며 세상을 살아가며 눈에 보이는 것들, 돈이나 물질이 전부가 아님을 일깨워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 환경을 만드는 것이 어른들의 책임과 역할이고요. 그런데 사랑에 대한 매우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올바름이며 그 기준은 복음이라고 합니다.
■ 정직과 책임
사회에서 사랑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지만 동시에 무척 어렵습니다. 하느님을 만나고 진리에 이르는 길이 다양하듯 평화를 위한 방법과 노력도 여러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마다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기에 견해나 정치색도 달라집니다. 서로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반목하고 갈등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다양함이 존중돼야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불가피하게 사회 현안은 상이한 입장 속에서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식별과 판단의 상황에서 우리가 얼마나 ‘복음과 가까이 있는가’입니다. 복음과 가까이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느님과 이웃을 나를 사랑하듯 사랑함’, ‘사익을 추구하지 않음’, ‘양심 앞에서 거짓이 없이 정직함’, ‘이웃에게 너그럽고 자기 자신의 과오에 엄격한 책임 의식을 가짐’ 등입니다.
■ 책임과 정직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종종 거짓과 무책임에 무감각할 때가 있습니다. 안타깝고 아픕니다. 그래서일까요? ‘성숙한 인간이란 자신에게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성찰이 무겁게 다가옵니다.(한나 아렌트 「책임과 판단」) 특히 「간추린 사회교리」 문헌에서 186회나 사용되는 ‘책임’이라는 표현은 자신의 권리만을 내세우는 개인주의가 아니며(158항) 정직함을 바탕으로(198항) 이웃에 대한 적극적 관심으로 확장돼야 하며(193항) 인간이 마땅히 실천해야 할 하나의 절대적 의무임을 강조합니다.(399항)
세상과 사회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관심은 하느님의 사랑에서 비롯됩니다.(3항) 그리고 그 사랑은 인간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수난을 당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하게 드러났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삼위일체 주님께서는 진정한 사랑이란 책임지는 사랑임을 보여주신 것이지요. 우리도 그 사랑을 깨닫고 실천해야 합니다.
“자신이 자유로이 주도하여 개인생활과 사회생활을 이루고 이끌어 가며 이에 대한 개인적 책임을 지는 것은 인간의 올바른 바람이며 의무이다.”(「간추린 사회교리」 135항)
이주형 요한 세례자 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