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로는 하느님을 열심히 연구하지만 그분께 마음을 드리지는 않는다. 하느님에 관한 지식은 넘쳐 나지만 하느님을 진정으로 알지는 못한다. 지식과 친밀함, 이것이 팬과 제자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점 중 하나다.”(카일 아이들먼 「팬인가, 제자인가」)
■ 대가 없는 희생
만일 누가 이런 제안을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신에게 맡기고자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은 다른 사람을 위한 숭고한 봉사이고, 모두가 당신에게 고마워할 것이고 당신의 헌신을 통해 기쁨과 행복을 얻을 겁니다. 그런데 그 일은 무척 힘든 일이고 보상도 매우 적거나 없을 수 있고 그 일로 인해 건강을 해칠 수도 있고 심지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누구든 선뜻 수락하기 어려울 겁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나눈 대화 중에 수위권 논쟁이 있지요? 제자들이 서로 누가 높은지 서열과 권력의 높낮이를 논쟁하고 있던 참인데 마침 예수님께서 “너희는 무슨 일로 논쟁하느냐?”라고 물으셨으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고 전합니다.(마르 9,34 참조) 수고와 희생에 대한 대가와 보상, 권력을 원하는 암묵적 표현으로 보입니다.
■ 봉사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봉사와 희생은 힘든 것이고 그 가치와 숭고함은 누구나 잘 알지만 그렇다고 강요될 수도 없습니다. 물론 봉사와 나눔, 사랑을 베푸는 그 자체로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가신 사랑과 봉사의 길을 가는 사람이며 하느님의 자녀들에게는 봉사의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적극적 의미를 강조합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봉사’ 참조)
더욱이 권력을 갖고 높은 자리에 있다면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권력의 목적은 봉사와 공동선이며(「간추린 사회교리」 168항, 408항 ,412항), 이를 위해 개인이나 단체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중재해야 하며, 이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고 합니다.(169항) 나아가 그런 자리와 권력이 봉사라는 본질을 망각한 채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스스로를 신격화할 위험이 있다고 합니다.(382항 참조) 사랑의 실천과 봉사는 신앙인의 의무이며, 인간이 갖는 세속적 권력의 참뜻을 잘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 스스로에 대한 성찰
저도 사제로 살면서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봉사와 나눔보다 보상에 욕심을 낼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뿐 아니라 저마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며 봉사하고 헌신하겠다는 수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부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봉사와 헌신을 위함이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사제이건 정치인이건 그 누구든 간에 봉사와 사랑이 결여된 삶은 파국을 맞이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포기하지 못하는 그 한 가지가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유혹이며, 우리는 깨어서 성찰하고 하느님 말씀을 들어야 하나 봅니다. 가장 먼저 나의 삶을 주님 말씀 안에서 성찰해야 합니다.
“인간의 권위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한계를 벗어날 때, 스스로를 신격화하여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한다…그러나 승리의 양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인간 역사에 걸쳐서 스스로를 절대 권력으로 높이려는 모든 권력을 물리치신다.”(「간추린 사회교리」 382항)
이주형 요한 세례자 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