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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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 숨어 계신 하느님의 숨은 일꾼,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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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날, 한 해의 마지막 주일 강론을 준비하려니, 긴장감이 몰려왔습니다. 온 세상이 예측할 수 없는 혼란함으로 짙은 어둠 속에 있는 듯하여 가슴이 갑갑했습니다. 생각은 두서가 없고, 마음은 산란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찰라, 성가정 축일에는 무조건 신바람을 냈던 어릴 적 기억이 스쳤습니다. 구유의 아기 예수님을 뵙고 하룻밤만 자고 나면 스테파노 축일이라는 게 너무 좋았던…. 나름 1등 예수님에 이어서 2등이 된 느낌, 세상에서 예수님의 제일 친한 친구로 뽑힌 근사한 기분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다짐합니다. 제발 그 시절의 그 순수했던 마음으로 오늘 강론만큼은 오직 기쁘게, 감사와 찬미로 채워 적을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성경은 성가정의 가정사를 세세히 들려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들 예수님을 봉헌하는 정결례에서 “양 한 마리를 바칠” 여유조차 없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분들의 고단한 일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꽤 오래, 당신의 아들에게 풍족한 삶을 허락하지 않는 하느님의 인색함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더 오랫동안 성모님이나 요셉 성인처럼 하느님께 뽑히는 사람은 무조건 ‘생고생’이라는 생각을 갖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 모자람을 채워주시고 덜된 모습을 가려주시어 당신의 사제로 선택해주신 벅찬 은혜에 감읍할 뿐입니다. 다만 많은 교우들이 지난날의 저처럼, 하느님의 사랑을 알지 못한 채, 하느님에 대한 좁은 지식에 머물러 지내는 현실에 영혼을 앓습니다.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탄식을 들려주면서 자신의 예언서를 시작하는 이사야 예언자는 “정녕 당신은 자신을 숨기시는 하느님”(이사 45,15)이라고 표현합니다. 살펴보면 창세 이래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숨어 계신 분이시니,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주목받지 않고 날마다 신중하게 자신의 존재를 숨기며 살아가는 요셉 안에서 우리는 저마다 곤경에 놓일 때의 중재자, 지원자, 안내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셉 성인은 숨겨져 있거나 그늘진 곳에 있는 이들이 구원 역사에서 비할 데 없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아버지의 마음으로」)라고 요셉 성인의 삶을 칭송했는데요. 그러고 보면 성모님과 요셉 성인의 사명은 하느님의 아들을 세상에 드러나지 않게 꼭꼭 숨겨 키우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과 성모님과 요셉 성인께서는 세상의 변방, 가난한 이들 속에서도 결코 하늘의 품위를 잃지 않음으로써, 땅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힘없고 약한 처지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손길이 함께 하심을 증거한 것입니다.

온 세상에서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빚어 선물하신 땅에서 그 무엇도 하찮은 것이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숨어, 돌보아주시는 하느님의 보호를 받는 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는 어느 누구도 모자라지 않고 덜되지 않은, 완벽한 존재인 까닭입니다.

사실 가톨릭 신앙인은 빵과 포도주 속에 숨으신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성체와 성혈로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뜻을 살펴 주님께 기쁨을 드리는 복된 몸의 주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꿈을 우리 안에 심어 놓으셨습니다. 주님의 헤아릴 수 없이 큰 사랑은 우리를 총애하십니다. 그분의 마음으로 세상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채워주십니다. 당신의 평화로 당신의 사랑을 살아낼 힘을 충만히 채워주십니다.

하여 그리스도인은 숨어계신 주님의 손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모신 주님의 발이 되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모님처럼 예수님을 사랑하고 요셉 성인의 마음으로 내 안에 오신 예수님을 섬기며 하느님의 나라를 성장시키는 복된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루 또 하루, 건강한 믿음으로 주님의 뜻을 실천하며, 이 땅에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며 열심히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과연 그런 삶이 가능한가?”라고 의심하지 맙시다. 우리에게 그 능력을 선물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셨고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생각해봅니다. 만약에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좋고 더 특별한 것들로 삶을 치장하여 세상의 부러움을 사는 것이 제일의 축복이고 은혜이며 은총이라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에게 그 전부를 아낌없이 주셨을 것입니다. 만약에 성가정의 조건이 풍족하고 화려한 것으로 가득찬 삶으로 완성될 수 있다면,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가정을 부요함으로 채워주지 않으셨을 리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본받으려는 성가정은 매일 매일 시간 시간마다 마음을 쏟아 붓는 기도로 형성되는 곳임을 명심하면 좋겠습니다. 그분과의 내밀한 소통이 곧 성가정의 구심점임을 새겨 살면 좋겠습니다. 튼튼한 성가정의 머릿돌은 하느님의 주위를 겉돌거나 맴돌지 않는 우직한 믿음임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우리 안에 숨어 계신 예수님의 뜻을 살펴 실천함으로 그분께 기쁨이 된다면 너무 좋겠습니다.

가정 성화 주간, 모든 가장들께 의롭고 독실하게 하느님의 때를 기다렸던 시메온처럼 성령에 귀 기울여 살아가는 축복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어머니들께서 한나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 곁에서 머무는 은혜의 주역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가 요셉 성인과 성모님을 따르며 모든 상황에서 “예”라고 응답하는 하느님의 일꾼으로 살아가시길, 온 마음으로 축복합니다. 아울러 수년, 제 글을 읽어주신 가톨릭신문 독자님들께 조아려 감사드리며. 두루, 하느님의 축복을 누리시길 빕니다!

※그동안 ‘말씀묵상’을 집필해 주신 대구대교구 사목연구소장 박용욱(미카엘) 신부님, 살레시오회 양승국(스테파노) 신부님, 부산가톨릭대 신학원장 장재봉(스테파노) 신부님, 인천가톨릭대 영성지도 담당 김기현(요한 세례자)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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