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당’하면 아무래도 행렬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저에게 있어서 가장 인상적인 입당 행렬은 2014년 8월 16일 광화문광장에서 거행된 시복식 미사에서의 교황님과 추기경단의 행렬입니다. 당시 저는 전례 실무자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미사 시작 10분 전에 미사를 시작하라는 교황청에서 파견된 전례 담당자의 사인을 보았습니다. 시계를 가리키며 ‘아직 행렬 출발 시간이 안 되었다’고 하니, ‘교황님이 준비되었으니 바로 시작하라’는 답변이 왔지요. 그래서 정한 시간보다 일찍 시복식 미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2시간 전에 모두 들어와서 준비하고 있는 신자들을 생각하여 조금이라도 먼저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신 교황님의 사목적 배려가 느껴지는 입당 행렬이었지요.
초기 그리스도 공동체에서는 입당 성가나 입당 행렬을 포함한 시작 예식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집에서 주일 모임(사도 2,46 참조)을 해야 했으며, 잦은 박해로 인하여 몰래 모여서 성찬례를 거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3세기의 문헌인 유스티누스의 「호교론」(제1권 67장 3절)과 아우구스티노의 「신국론」(22장 8절)에 따르면 미사는 집전자의 인사와 독서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313)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에 자유가 주어지고, 황제의 배려로 대성당을 짓게 되면서 서서히 박해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격식을 차린 예식을 장엄하게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비교적 자유로운 형태로 거행되던 시작 예식을 정비하고 고정시킨 것은 16세기의 트리엔트공의회 직후 비오 5세 교황이 반포한 「로마 미사 경본」(1570)부터였습니다. 이 「로마 미사 경본」은 오직 사제에 대해서만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전례 개혁이 반영된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로마 미사 경본」(1970)에서 입당에 대한 첫 마디가 “교우들이 모인 다음 사제가 부제와 봉사자들과 함께 들어올 때 입당 노래를 시작한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47항)로 교회가 교우들의 모임을 우선시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입당 성가는 언제 도입되었을까요? 「주교 실록」(Liber pontificalis)에 따르면, 입당송은 첼레스티노 1세 교황(423-432)에 의해 도입되었다고 합니다. 더욱 분명한 증거는 5세기 이래 로마의 주교인 교황이 정기적으로 일곱 교회를 돌면서 ‘순회미사’를 거행할 때, 라테라노 대성당 옆에 있는 교황궁에서부터 행렬하며 부른 속죄대송과 ‘기리에’ 호칭기도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행렬을 하면서 성가를 부르는 것이 점차 정착되고, 주교와 사제의 집전 미사에도 적용되어 결국 모든 미사의 기본 절차가 되었습니다.
입당 성가는 본래 입당 행렬에 맞추어 시작하고 마치는 것이지만, 요즈음처럼 입당 행렬의 시간이 짧은 경우에는 “함께 모인 이들의 일치를 굳게 하며, 전례 시기와 축제의 신비로 그들의 마음을 이끌고, 그들을 사제와 봉사자들의 행렬에 참여시키는 목적”(「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47항)을 고려하여 입당 성가를 2절까지 하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입당 성가를 부르지 않으면 입당송을 해설자의 인도로 신자들이 함께 하거나 사제가 직접 낭송합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48항 참조) 입당 행렬에 동반하는 입당 성가 또는 입당송은 미사에 참석한 모든 이가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행렬에 동참하고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윤종식 티모테오 신부
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