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5주일입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주 복음에서 예수님은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더러운 영을 쫓아내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권위 있는 가르침과 더러운 영이 복종하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희망을 품습니다. 그분의 소문이 갈릴래아 주변에 두루 퍼졌다고 하니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활동을 계속 이어가십니다. 제자들의 집에 가셔서 그곳에서 시몬의 장모를 치유합니다. 또한 그 소문을 듣고 몰려온 병자, 마귀 들린 사람들을 쉴 새 없이 치유하십니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하고 새벽에는 홀로 치열하게 기도하십니다. 제자들이 찾을 때까지 기도를 열심히 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복음을 선포하자고 길을 떠나십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이 어떻게 다가옵니까? 예수님이니까,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니까 너무 당연한 것 인가요?
하느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까지 취한 것입니다. 그분이 인간으로 사셨다는 것은 아무 걱정, 갈등 없이 단지 몸만 일시적으로 취한 하느님으로 사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인간이 겪어야 할 어려움, 슬픔, 기쁨, 고통, 보람 등을 다 체험하며 살아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도 늘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으면서 살아가셨습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히브 4, 15)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만약, 거룩한 이야기를 가르치는 것만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라면 그렇게 고생하고 기도하며 사셨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이 삶의 여정에서 하느님을 찾고 그 뜻을 이루는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주기 위해 인간으로 사셨습니다. 우리 인생은 절망과 좌절, 죄의식, 교만, 우월감에 파묻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갖고 살아가면서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고 동료를 사랑하는 여정임을 알려주시려 인간의 삶을 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누구보다 더 치열합니다. 자신의 마음 가는 대로, 혹은 계획대로 사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기 위해 최선을 다하십니다. 이런 예수님의 삶은 복음 선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복음 선포는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입니다. 힘과 재물, 능력으로 다스리는 세상이 아니라 자비와 연민으로 모든 사람이 사랑을 체험하고 나누는 세상입니다. 이것이 기쁜 소식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사회적, 경제적 성취에 따라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고, 이 사랑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기에 기쁜 소식입니다.
기쁜 소식은 삶의 현장에서 치유와 구마(驅魔, 악한 영을 쫓아냄)로 드러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우리는 많은 경우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과 그것을 이루는 능력에만 주목합니다. 그러나 놀라운 능력은 악마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에게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서 구마를 한다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루카 11,15참조) 또한 성서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예수님 당시에 치유, 구마를 행하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보면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다른 이들과 다른 어떤 ‘권위’를 봅니다. 그 권위는 ‘하느님의 영’으로부터 오는 권위이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진심으로 아픈 사람들을 치유하고 악을 내쫓는 삶에서 드러나는 권위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치유와 구마는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하느님, 사람을 살리시는 하느님이심을 체험하게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예수님 활동의 본질입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단지 몸의 병을 고쳐준 것이 아닙니다. 당시 병자는 자신의 죄에 대한 벌을 받는 사람, 부정(不淨)한 사람으로 취급을 받았기에 사회적으로도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또한 가난해서 치료를 받지 못해 병자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몸만 병이 든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고 사랑을 체험하기 힘든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이가 사랑을 체험하기를 바라시기에 이들을 회복시키십니다. 예수님이 하신 치유는 몸의 병을 낫게 했을 뿐 아니라 사랑을 체험하게 하고 사회적으로도 존중받는 사람으로 회복시킨 사랑의 행위입니다.
악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 혹은 하느님 없이 나 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악은 나의 욕망을 부추겨서 나만을 생각하게 합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고 내가 옳다고 믿는 대로 살면 되고, 내가 알아서 잘 살 수 있다고 유혹하는 존재가 악입니다. 이런 삶에서 하느님이 있을 자리는 없으며 불행히도 이런 모습이 바로 ‘악한 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구마는 우리가 악에서 자유롭게 되도록 이끄시고 하느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도록 초대하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묵상하다 보니 오늘 1독서와 2독서가 새롭게 보입니다. 1독서 욥기는 절망하는 인간, 한탄하는 인간, 그럼에도 자비를 청하는 인간의 기도입니다. 마치 병을 치유받기 위해 혹은 악에 사로잡혀 고통스러워하며 예수님을 찾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2독서는 복음 선포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하는 바오로 성인의 이야기입니다. 하느님 자리에 율법을 앉히고 자기 옳음을 주장했던 바오로 성인이 하느님을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유인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만나 치유된 혹은 악을 물리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늘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자비에 힘입어 치유되고 악에 맞서서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하느님 사랑으로 회복되어, 예수님처럼 복음을 증거하러 각자의 삶의 터전으로 ‘나아가라’고 초대하십니다.
현재우 에드몬드
한국평단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