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말하고 듣고 하는 대화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무래도 ‘공감’(共感)이지 않을까 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공감이라는 관점에 가장 인상적인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크리스마스이브에 플랑드르의 전장에서 있었습니다. 독일군 병사들이 위문용으로 보내온 작은 크리스마스트리 수천 개에 촛불을 붙이고 캐럴을 부르기 시작하고 얼마 후에 영국군들도 캐럴을 함께 부르고 손뼉도 치며 화답하면서 전장은 적이 아닌 대화의 상대자로 서로를 인정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2005년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영화로 재조명됩니다. 동료 인간과의 유대감에 대한 갈망에서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공감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드러낸 일화로 기억됩니다.
교회는 이러한 공감을 위한 구조를 전례에 반영했습니다. 특히 미사에서 하느님과의 소통과 공감을 위해 대화와 식사라는 두 구조, 곧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를 거행합니다. 그래서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이하 ‘총지침)에서 “미사는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이 두 부분은 서로 밀접히 결합되어 오직 하나의 예배 행위를 이룬다”(28항)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말씀 전례는 하느님과 당신 백성과의 대화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말씀을 먼저 시작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교회 안에서 성경이 봉독될 때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며,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선포”(총지침, 29항)하십니다. 이때 참석한 모든 이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참석한 이들은 듣기만 하는가? 아닙니다.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고 응답합니다. 말씀 전례에서 ‘선포’된 하느님 말씀은 제1독서, 화답송 본문, 제2독서, 알렐루야 본문, 복음, 강론입니다. 반면에 ‘응답’에 속하는 것은 각 독서 후 ‘아멘’, 화답송의 후렴, 알렐루야의 후렴, 강론 안에 나타날 수 있는 독서 내용에 대한 반향들, 신앙 고백, 보편 지향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교회에서는 버팀과 활력이 되고, 교회의 자녀들에게는 신앙의 힘, 영혼의 양식 그리고 영성 생활의 순수하고도 영구적인 원천이 되는 힘과 능력”(계시헌장, 21항)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활동’이 꼭 필요합니다. “귀에 들려온 하느님 말씀이 참으로 마음속까지 움직이게 하려면 성령께서 활동하셔야 합니다. 성령의 영감과 도움으로 하느님 말씀이 전례 행위의 토대가 되고, 온 삶을 받쳐 주는 규범이 됩니다”(「미사 독서 목록 지침」, 제9항). 귀로 듣고 입으로 응답하며, 마음에 새기고 몸이 움직이는 데 있어서 보이지 않는 성령의 활동이 있어야 합니다.
매 미사의 말씀 전례에서 하느님 말씀을 들으면서 왜 우리는 그만큼 변화되지 못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마태 13,1-9; 마르 4,1-9; 루카 8,4-8)에서 하느님 말씀을 듣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잘못된 태도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또한 성서 주석가인 아돌프 줄리허는 잘못된 청취 형태를 인간 마음의 세 가지 잘못된 태도, 곧 둔감하거나 경솔, 그리고 세속적 물욕에 기인한다고 합니다. 말씀 전례에서 하느님 말씀은 과거의 사건을 상기시키는 것을 넘어서 ‘지금 여기’에서 선포되는 기쁜 소식임을 모든 이가 깨닫고 다음과 같이 고백하면 좋겠습니다.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시편 119,105)
윤종식 티모테오 신부
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