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설정 당시 본당 24개에 신자 4만2548명이었던 수원교구는 25년 만에 신자 20만 명에 복음화율 6에 달하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1988년 설정 25주년을 맞은 교구는 재정 자립을 바탕으로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거듭날 것을 다짐했다. 밖으로는 아시아교회를 위한 선교와 경제적 지원을 했고, 안으로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25주년 맞아 ‘빛이 되어’ 나아갈 것 다짐
1984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을 계기로 교구는 민족 복음화와 이웃 민족들의 복음화를 사목 목표로 설정하면서 교구 내 선교 활동에 집중했다. 그 결과 교구 설정 25주년인 1988년에는 신자 20만 명에 복음화율은 6를 넘어섰다. 당시 14개 교구 중 신자 수 4위, 복음화율 3위를 차지할 만큼 교세 확장이 두드러졌다.
교구는 복음화의 결실을 토대로 미래를 향해 ‘빛이 되어’ 나아갈 준비를 했다. 교구장 김남수(안젤로) 주교는 ‘빛이 되어’란 표어를 내걸고, 묵주기도 3억 단 봉헌과 ▲성체 중심의 성사생활 ▲성서 중심의 배우는 생활 ▲로사리오 중심의 기도생활 ▲단식·금육 중심의 희생과 극기의 생활 ▲모두 하나 됨을 확인하며 반기도회 활성화 ▲기쁨을 전하는 생활(성소 계발과 육성, 전교) 등의 실천을 제안했다.
교구는 1987년 6월 26일 교구 설정 25주년 기념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했다. 이듬해인 1988년에는 성경 읽기 운동을 비롯해 본당별 중고등부 백일장, 어린이 신앙대회 ‘늘샘고을 잔치’, ‘젊은이여 우뚝 서라’ 주제 청년 신앙대회, ‘빛이 되어 밝게 빛나리’ 주제 중고등학생 신앙대회가 열렸다. 또한 기념사업 일환으로 가톨릭센터 건립, 농아를 위한 특수 교리반과 행려자를 위한 식당 등도 운영했다.
1988년 10월 9일 수원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교구 설정 25주년 기념 신앙대회는 신앙 선조들의 선교 정신을 계승해 그리스도의 빛을 이 땅에 전파해 나갈 것을 다짐하는 자리였다.
김남수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교구 설정 이후 25년간 교구의 성장과 발전을 언급하고, 향후 추진해야 할 교구의 사명으로 이웃 전교를 강조했다. 또한 교구 재정 자립을 바탕으로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변화돼야 함을 강조했다.
김 주교는 “밖으로는 아시아를 비롯한 해외로 선교사를 파견하고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하며 안으로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웃을 찾아가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교회 수입의 10 정도를 본당과 교구가 자선비로 사용하도록 주문했다. 실제 교구는 설정 25주년 행사 비용 중 10 이상을 자선사업에 사용했다. 행사 3부에 열린 기념식 중 교구는 25개 사회사업 단체에 약 1300만 원의 성금을 전달했다.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설정 25주년을 맞이한 교구의 핵심 목표는 ‘아시아의 빛’ 역할을 담당하며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한 단계 도약하는 것이었다. 교회의 선교 사명을 기본적으로 강조해 온 당시 교황청의 요청도 교구가 해외 선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원동력이 됐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김남수 주교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은 아시아 선교에 대한 한국교회의 사명을 자각했고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 외방 선교회의 선교 방향을 동아시아로 전환하고, 더 나아가 북한 선교를 지향했다.
김남수 주교는 해외 선교에 있어서 사제, 수도자뿐 아니라 훈련받은 레지오 단원 등 역량 있는 평신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강조했다. 평신도 참여를 강조한 것은 순교자의 후손으로서 선조들의 순교 신심을 본받아 더욱 적극적으로 선교사업이 펼쳐지기를 희망했기 때문이었다.
교구는 설정 30주년인 1993년부터 3년간의 사목 목표로 복음화 3단계를 설정했다. 1994년은 ‘민족 복음화의 해’로서 남북통일과 북한 선교를 가장 큰 과제로 상정했다. 현실적으로 당장 선교사를 파견하기 어려운 북한 대신 그 교두보 역할을 할 중국에 선교 역량을 집중했다.
구체적인 중국 선교 시도는 1993년 6월 김남수 주교의 중국 방문에서 비롯됐다. 교구 차원에서 중국 길림교구를 돕고 북방 선교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1994년 7월 수원교구는 길림교구와 자매결연 했다. 이와 함께 1993년부터 통일 준비 기금 조성을 시작했다. 본당 총예산의 2를 적립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에 2차 헌금을 실시해 기금을 조성했다.
이어 1995년 ‘이웃 민족들의 복음화의 해’를 맞아 중국과 러시아 등 아시아 전교가 우리의 사명이라고 강조했고 구체적인 선교 방안을 모색했다. 수원시 내 본당은 북방 선교를 위한 통일 성금 통장 운동 결의대회(1가구 1통장 갖기 운동)를 개최하고 모금을 권장했다. 1996년부터는 매월 마지막 주일을 ‘민족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의 날’로 정하고 통일 기원 미사를 봉헌하도록 했다.
1997년 ‘600만 북녘 동포들이 아사 직전’이라는 긴급한 상황이 전해지자, 김남수 주교는 5월 11일 특별 담화문을 발표해 “북방 선교 중에서도 북한 선교를 대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아가자는 희년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교구는 ‘북녘에 있는 내 동포, 내 가족과 밥을 나누자’는 구호를 내걸고, 1세대 1가정 돕기 운동, 매주 금요일 단식을 통한 봉헌, 본당 내 모금함 설치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가정에서 음식을 남기지 않기, 북한 동포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기 등의 실천을 권고했고, 본당 차원에서는 예산으로 책정된 자선비 중 일부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등 북한 원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