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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에게 무얼 만들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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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학기의 강의실이 호기심으로 반짝입니다. 이번 학기에 ‘AI 시대의 영미문학’ 강의를 맡아, 첫 시간에 우리 학생들에게 물어봅니다. 지금 시대를 이렇게 규정하는 것이 온당한지. 다들 ‘AI 시대’를 당연히 받아들이지만, 그게 시대를 규정하는 말이 될 수 있는지. 전 세계 80억 인구에 더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이 있을지. 이런 질문과 함께 두루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어요. 재난과 전쟁의 시대, 기후위기의 시대, 혐오와 불안의 시대 변화의 시대, 상상의 시대 등 여러 단어가 나왔는데, 마지막에 제가 지금 시대를 ‘사랑의 시대’로 규정할 수 있을지 물어보니 학생들은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시를 읽으면 학생들은 대개 ‘시가 어렵다’고 난처한 표정을 합니다. 시는 구절들 사이의 틈새를 메꾸어 상상하며 읽어야 하지요. 시의 독자가 되려면 끈기가 있어야 한다며 시를 잘 읽으면 삶도, 이 세계도 잘 읽을 수 있다고 학생들을 살살 달래며 묻습니다. ‘여러분, 부자 되는 법 아세요?’ 학생들은 다시 눈을 반짝입니다. 


효용가치가 적다고 여겨지는 인문학, 거기서도 좁은 영역에 있는 시를 읽는 일과 부자 되기가 무슨 상관? 뚱딴지같은 질문에 이어 말합니다. ‘시의 언어를 통해 이 세계를 바라보는 구체적인 시선을 얻으면 풍성해지지요. 통념을 거슬러 다시 생각하는 사유의 힘이 여러분을 튼튼하게 만들어 줄 거예요.’ 그렇게 읽은 첫 시에 이 구절이 있었어요. “인간이 인간에게 무얼 만들었기에.”


봄날 아침에 시인은 새소리를 듣습니다. 숲에서는 만물이 조화롭게 깨어나는 것 같은데 시인은 문득 슬픈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세상을 생각하니 이런저런 근심이 스며든 것이지요. 19세기의 시인은 산업혁명이 몰고 온 기계화에 침탈당한 농촌을 아프게 바라보며 이런 질문을 던졌는데, 21세기 교실, AI 시대에 이 질문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최근 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AI에 서로 다른 답이 나오기 마련인 질문을 던졌더니, 다른 AI들이 모두 다 비슷한 대답을 했다고 해요. 확률을 앞세운 AI는 창의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지요. AI를 앞세워 손쉽게 치르는 전쟁은 죽음마저도 전략 게임으로 소비하면서 사람들의 고통을 지우고 있고요. 기술 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기술적 성취의 열매는 극소수의 이익으로 돌아가고, 초연결 사회에서 상처받는 개인의 고립감은 더 깊어지는 것 같아요. 존엄성을 잃은 인간이 스스로 도구로 전락할 때 이 세계는 문명이라는 허울 좋은 포장 아래 여전한 황야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느님이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인간을 만드실 때 무엇을 생각하셨을까요? 서로 사랑하는 마음, 연민으로 다정하게 보좌하는 그런 인간을 생각하지 않으셨을까요? 전장(戰場)과 안방의 거리가 사라진 이 무자비한 세계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무얼 할 수 있나’ 다시 생각해 봅니다. 학기가 끝날 즈음엔 이 시대를 ‘사랑의 시대’로 규정할 수 있다고 긍정하는 학생이 더 늘면 좋겠다는 바람 속에 또 시를 읽습니다. 공감을 잇고 고통을 나누는 연습, 그 작은 사명에 동참하는 시간이 감사합니다.



글 _ 정은귀 스테파니아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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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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