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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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진 마음…그리고 이기적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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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뜨겁게 체험했던 20대 시절부터 뉴스나 신문 기사에 사건,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주님, 저 영혼에 영원한 안식과 위로를 주소서”라는 화살기도를 봉헌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30여 년간 기도를 해왔지만, 요즈음은 기도하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성의 없는 기도라도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전대사를 남에게 양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여러 행사를 참여하며 받은 전대사를 연옥에 있는 불쌍한 영혼에게 양보하기도 했다. 내가 해 온 나름의 선행이라면 최선을 다한 기도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 최근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으로 많은 이가, 특히 170여 명의 어린 학생들이 안타깝게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내가 예전과는 다르게 습관적이고 형식적으로 기도를 하고 있었던 무뎌진 마음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주가가 폭락하고 유류 가격이 올랐다는 뉴스에 분노하며 주식장을 보고 있는 내 모습이 순간 우습고 초라해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먼 이웃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엔 마음이 무뎌지고, 내 생활에 당장이라도 불편한 상황은 분노하는 이기적인 내 모습이 주님 보시기에 얼마나 한심해 보일까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나의 가장 지저분한 발을 씻겨 주고 닦아주고 안아주고 입맞춤해 주신 주님의 사랑을 체험했다면서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전하는 내가 사실은 무디고 이기적인 삶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신앙인이라면 고통 가운데 있을 그들을 기억하며 기도해야 하고, 게다가 찬양 사도라면 찬양으로 위로를 전하고 평화를 노래해야 할 거다. 하지만 전쟁으로 세상이 혼란한 가운데 SNS 같은 인터넷 세상에 여전히 나의 활동을 알리고, 나의 생활을 자랑하고, 나를 홍보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모습에 뭔가 잘못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멈춰 나의 삶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외롭고 힘들었던 때 주님은 마냥 가만히 계시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위로와 격려, 그리고 기도가 멈추지 않도록 해 주셨다.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말만 할 게 아니라, 고통과 두려움에 있을 이웃을 위해 최소한의 기도와 찬양으로 다가가는 게 도리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들을 위해 애타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위로해 주시는 주님께 작게나마 동참하고 기도하자. 오히려 주님께 위로와 웃음을 드릴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희망하며,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를 비판하며 하셨던 말씀으로 마무리해 본다. “노숙자가 추위에 얼어 죽어도 뉴스가 되지 않지만, 주식 시장이 2포인트 떨어지면 뉴스가 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입니까?”(「복음의 기쁨」 53항)



글 _ 박우곤 알렉시우스(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지기, 안드레아여행사 성지순례 프로그램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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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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