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4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말씀묵상] 주님 수난 성지 주일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시려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여, 미사 전례 중 성지 행렬 전,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관한 복음(마태 21,1-11)을 듣습니다. 그러나 파스카 신비는 입성만으로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말씀의 전례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마태 26,14-27,66)를 함께 봉독하지요.


사실 이 두 복음은 서로 극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입성에 관한 복음이 예수님의 ‘메시아적 면모’를 보여준다면, 수난기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되는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 군중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마태 21,9)를 외치며 환호하는 반면, 수난기에서 군중들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마태 27,22)라고 외치며 야유하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지요.


입성기와 수난기는 이렇게 상반된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신비를 이룹니다. 추앙받던 임금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는 점에서는 상반된 내용이지만, 이 둘은 결국 죽음 없이는 부활도 없으며 고난 없이는 영광도 없다는 파스카의 신비 안에서 일치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환대받으며 들어 높여지던 예수님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낮아짐으로써 구원의 신비를 완성하신다는 이 파스카 신비는, 입성 복음에서 ‘겸손한 임금’이라는 표현으로 암시됩니다.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암나귀를, 짐바리 짐승의 새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마태 21,5)


마태오복음이 ‘겸손하다’라는 뜻으로 사용한 단어는 ‘프라우스(πρα??)’입니다. 프라우스는 마태오복음이 인용한 즈카르야 예언서의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즈카 9,9)라는 구절에서, 겸손을 뜻하는 히브리어 ‘아니(?????)’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말입니다. ‘아니’는 어원적으로, 핍박받거나 괴롭힘당하는 것을 뜻하는 ‘아나흐(?????)’에서 유래하지요.


즉, 프라우스가 말하는 겸손이란, 일반적으로 예의와 공손함의 차원에서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태도가 아니라, 어원적으로 어떠한 핍박과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끝까지 참아 인내하며 ‘견디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진정한 겸손이란,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것만이 아니라 나에게 닥친 고통을 묵묵하게 인내하며 받아들이는 행위를 뜻하지요. 따라서 성경이 장차 오실 분을 ‘겸손한 임금님’이라고 칭한 건, 그분은 비록 왕이지만 앞으로 온갖 핍박과 모진 고통을 참아 받으며, 그것을 묵묵히 감내하고 죽기까지 순종하실 것에 대한 암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편, 겸손을 뜻하는 프라우스의 출발어 ‘아니’는 시편 37편에서 ‘가난한 이들’(시편 37,11)로 번역하는 ‘아나빔(?????????)’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아나빔은 ‘아나브(?????)’라는 단어의 복수형인데, 아나브 역시 핍박과 고통받는다는 걸 의미하는 아나흐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겸손한(프라우스) 이들과 가난한 이들(아나빔)은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시편이 노래하는 가난한 이들이란, 핍박과 고통을 그대로 감내해야 하는 가련한 이들입니다. 그들은 너무나 비참한 나머지 오직 주님께만 희망을 둘 수 있는 이들이지요. 그들은 오로지 주님만을 신뢰하며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죄악을 그저 인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이들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고통 속에서 주님의 뜻을 찾으며, 비참한 현실을 묵묵하고 겸허하게 수용한다는 점에서 겸손한 이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요컨대, 가난한 이들은 겸손한 이들이며, 겸손한 이들은 곧 고통 속에서 주님 뜻을 찾고 그 뜻에 순종하는 이들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님이 겸손한(πρα??) 임금으로 불리는 이유는,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라고 기도하시면서 성부의 뜻에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파스카 신비는 예수님처럼 가난하고 겸손하며 순종하는 이에게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겸손한 임금을 따르는 겸손한 백성에게서 부활의 신비가 열릴 것입니다.



글_ 김정일 안드레아 신부(의정부교구·서울대교구 대신학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6-03-24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4. 4

마르 12장 31절
너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