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제2대 교구장 김남수(안젤로) 주교 재임 약 23년 동안 교구는 그야말로 비약적인 교세 성장을 이뤘다. 교구는 1990년대 초부터 교구의 발전을 예상하고 교구청의 확대, 이전을 준비했다. 1967년부터 사용하던 화서동 교구청사를 떠나 정자동 교구청 시대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교구청 조직의 확대
김남수 주교가 착좌하던 1974년 교구 신자 수 6만8000명이었고, 1990년대에 이르면서 신자 수가 6배 이상 늘어 42만 명에 달했다. 사제는 62명에서 248명으로, 본당은 31개에서 100개로 증가했다. 비단 인구 증가만의 결과는 아니었다. 1983년 처음으로 5를 넘었던 신자 수 비율은 1988년에는 6를 넘어 당시 14개 교구 중 신자 수 4위, 신자 비율 3위를 차지할 만큼 교구의 교세 확장이 두드러졌다. 한강 이남 경기 지역이 급속히 도시화되고 인구가 증가하는 상황에 교구의 적극적인 전교 활동이 더해졌던 것이다.
교구는 이런 변화의 흐름에 따라 교구청 편제를 새로 정비하고 개편해 왔다. 김남수 주교는 1977년 교구청 편제를 ▲사무처 ▲관리국 ▲사목국 ▲교육원 ▲비서실로 나눴다. 1처 2국 1원 1실 체제였지만, 관리국장이 사무처장을 겸하고 사목국장이 교육원장을 겸하는 형태로 운영됐다.
교세가 확장됨에 따라 신자들의 신심 함양과 전교 활동 지원을 위해 1983년 교육국이 신설됐다. 이어 수원가톨릭대학의 설립에 따라 성소 계발과 신학생 양성 지원을 위해 1987년 성소국도 새롭게 만들어졌다.
나아가 교구는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에 적극 나섰다. 특히 장애인을 위한 지원과 사목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교구는 1990년 7월 장애자 사목실을 사목국으로 이관하면서 사목국 산하에 사회복지과를 신설했고, 같은 해 12월 사회복지과를 국으로 승격시켰다. 이렇게 교구청 조직은 1처 5국 체제로 확대됐다.
복음화와 청소년사목에 힘을 싣다
김남수 주교 재임 시기 중 폭발적으로 신자가 증가한 시기는 1980년대다. 김 주교는 당시 주교좌인 조원동성당이 교구 행사를 치르는 공간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새 주교좌성당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교세에 비례해 교구 내 다양한 사목 분야를 지원하기 위해 점차 규모가 확장되고 있는 교구청 역시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다.
이에 교구는 1991년 10월 수원 정자동에 새 성당 부지와 교구청 신청사 부지를 매입했고 1994년 10월 기공식을 거행했다. 신축 교구청은 대지 1만684㎡, 연면적 1만3203㎡의 지하 2층·지상 6층 건물이었다. 교구청 건물의 형상은 수원의 상징이자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순교자가 피를 흘린 순교지인 수원 화성을 본떠 교구의 정체성을 담아냈다.
교구는 새 교구청 이전에 앞서 1997년 1월 1일 교구청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기존의 1처 5국을 사무처·복음화국·청소년국·관리국으로 구성된 1처 3국으로 변경한 것이다. ‘사목’의 관점을 ‘복음화’와 ‘청소년’으로 확대하고 강화시킨 것이다.
교구는 1997년 1월 발행된 「교구동정」에서 교구청 조직 개편의 취지를 전했다. 교구는 “3000년기를 여는 이 시점에서 주로 기존 신자들을 돌보는 차원의 ‘사목’이라는 협의의 개념과 관점에서 탈피하여 세상에 복음 정신을 불어넣는다는 ‘복음화’라는 개념으로 시야를 넓혀 적극적인 자세로 교회의 본질이요 사명인 세상의 복음화를 효과적으로 수행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복음화국의 설립 의미를 밝혔다.
복음화국은 기존 사목국·사회복지국·교육국을 통합한 부서다. 3개국이 1개로 줄어든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각 분야의 활동은 오히려 더욱 확대됐다. 또한 성소국과 사목국의 주일학교 교육 등의 활동을 확장해 청소년국을 신설했다. 미래 세대이자 교회의 현재이기도 한 청소년사목에 더욱 힘을 싣기 위한 조치였다.
교구청 조직과 함께 본당 조직 구조도 개편했다. 교구는 1991년 사제총회와 사제평의회를 통해 본당 사목회와 본당 평신도사도직협의회로 이뤄진 본당 조직을 일원화하기로 하고, 1993년부터 1994년까지 연구 모임과 토론회를 거쳐 종합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교구 본당 사목협의회 회칙’을 마련해 모든 본당이 본당 최고 기관인 사목협의회를 운영하도록 했다. 주임신부의 사목활동에 평신도들이 협력하는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이다.
새 주교좌, 정자동주교좌성당
교구의 중심이 될 정자동주교좌성당도 새 교구청과 함께 들어섰다. 지하 1층, 지상 5층에 건축면적 6611㎡에 달하는 성당은 동시에 25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교구의 첫 주교좌 고등동성당의 규모 400㎡의 16배가 넘는 거대한 성당이다. 덕분에 교구의 다양한 행사에 더 많은 교구민이 함께할 수 있게 됐다.
건축 당시 성당의 제대는 조광호(시몬) 신부가 그린 프레스코 벽화로 장식됐다. 부활을 주제로 한 이 제대 벽화는 당시 국내 최대 규모였다. 2009년 리노베이션을 거치면서 현재는 12사도의 모습이 담긴 대형 목각부조가 제대 벽에 자리하고 있다.
특히 3층 대성당은 기둥 하나 없이 폭이 30m에 달하는 넓은 공간을 이루고 있다. 5층 성가대석까지 이어지는 높이가 공간의 웅장함을 더한다. 건축 당시 최신 기술을 활용해 기둥 없는 대형 공간을 건축했다. 성당에 오는 누구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를 향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997년 8월 20일 봉헌된 성당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교구의 크고 작은 행사를 도맡아오며 교구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