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한 봄 하늘에 홀리듯 이끌려 길을 나섰습니다. 마무리해야 하는 번역이 있어서 컴퓨터 앞에서 더 고민을 해야 했지만 하늘이 저를 밖으로 부르네요. 며칠 사이, 나무에 연두 새순이 돋아났습니다. 이리 고운 생명을 품은 나무는 그대로 신비입니다. 메마른 개나리 덤불은 연노랑 꽃순을 벌써 피워내고 있습니다.
산길을 휘돌아 걷는 길에는 사람도 많고 이야기도 많습니다. 저는 주로 혼자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합니다. 바빠서 챙기지 못한 이들의 안부도 가끔 물어보고요. 넘어져 다친 어머니를 간병하고 있는 친구는 어머니가 아프다 하시는 걸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워 하네요. 매번 화급하게 반응하는 게 맞는지, 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게 맞는지. 매일 119를 부를 수 없기에 절절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객관화를 하는 자신이 잘못된 건 아닌지 조심스레 묻습니다. 친구의 다정한 성품을 알기에 그런 것 아니라고 말해줍니다.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들을 지나는 우리는 서로에게 서툰 위로자이지만,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 호흡의 휴식입니다.
봄 하늘을 보며 걷다가 저는 그만 또 눈물이 났어요. 봄의 빛깔이 너무 고와서 또 아버지 생각이 났고, 투병 중이신 삼촌을 떠올리며 묵주기도를 드리던 중에는 간절함에 또 눈물이 났어요. 전쟁이 어떻게 될까,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사람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어요. 소매로 눈물 닦으며 걷다가 문득 독일의 작가 노발리스의 말이 생각났어요. “우리는 대체 어디로 가는가?”, “늘 집으로 가지.” 작가가 짧게 세상을 다녀간 후에 나온 작품집에 실린 한 대목. 그리움과 염려에 눈물 그렁그렁 차오르던 산책길에 저를 살린 건 이 말 한 마디, 그리고 봄 하늘.
오늘 연한 하늘빛은 너무 아름다웠거든요.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만 눈을 내내 하늘에 두고 “늘 집으로 가지”를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있다고, 그 집은 우리의 본향이라고. 어리석은 인간이 세상을 비참하고 어렵게 만들어가는 시절에도 다시 돌아온 봄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 하루는 얼마나 보드라운지, 신비한 평화와 일치 안에서 저는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존재의 근원인 그 집에 이미 안겨 있었습니다.
그러니 어제의 삶과 오늘의 죽음에 절망하면 아니 된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오늘 제게 온 말의 선물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싶어요. 그러니 하느님이 우리에게 늘 주시는 선물을 그대로 잘 받아들이는 평안의 감각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그 평안은 내어줌과 내맡김이고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7) 이미 주신 평화 안에서 우리는 늘 집으로 가고 있습니다. 늘 집으로 가는 우리임을 안다면 분쟁도 전쟁도 멈추어야 할 텐데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잿빛 하늘 아래 고통받는 이들의 숨 막히는 공포에 부디 하느님이 함께하시길 빌며 평화를, 평화를 빕니다.
글 _ 정은귀 스테파니아(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