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는 정치, 이념, 세대, 젠더 등 다양한 층위에서 극심한 양극화와 분열을 겪고 있다. 특히 온라인의 정치적 공간에서는 상대를 인격으로 대하기보다 특정 진영의 대표나 타도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며 분노와 혐오를 쏟아낸다. 이렇게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Homo homini lupus)라고 주장하는 세상은 성공, 쾌락, 안락을 행복의 기준으로 제시하지만,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며 전혀 다른 길을 보여 주신다.(마태 5,3 이하 참조)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자비로운 사람들’ 또는 ‘온유한 사람들’, 더 나아가 ‘슬퍼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진복팔단(眞福八段)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주의적인 농담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 제2부 제1권 제68-70문을 통해 이러한 진정한 행복들이 인간의 단순한 노력을 넘어 성령의 선물과 열매를 통해 우리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실재하는 행복임을 역설한다. 오늘의 불안과 분열 속에서 신자들이 성령의 선물과 열매를 통해 진정한 행복을 맛보는 길을 살펴보자.
본성의 한계를 넘어 성령의 이끄심으로
인간은 이성의 판단과 주입된 덕(대신덕)을 통해 본성적인 목적에 도달하려 노력하지만, 자연본성을 넘어서는 최종 목적인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데에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비록 신앙, 희망, 참사랑이라는 신학적 덕, 즉 대신덕(virtus theologiae)이 주입되었다 하더라도, 인간의 이성은 하느님이라는 초자연적 목적을 향한 질서를 확립하는 데 여전히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대신덕은 우리 영혼을 직접적으로 하느님 자신을 향해 정위시키는 시작일 뿐이다”라고 강조하며, 인간적인 이성의 숙고를 넘어서는 하느님의 직접적인 도움이 필요함을 지적한다.(I-II,63,3,ad2)
이러한 맥락에서 성령의 선물은 인간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활동과 격려에 잘 따르도록 만드는 내적 준비이다.(I-II,68,2) 이는 우리가 단순히 자신의 의지로 고통을 견디거나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신비로운 충동(instinctus)을 온순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초자연적인 행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결국 성령의 선물은 이성의 결함을 보완하고 우리를 하느님의 영에 이끌리는 삶으로 완성시킨다.
하느님 뜻 따르게 하는 ‘성령칠은’…인간 삶에 작용하며 참된 영혼 완성
덕행으로 얻는 성령의 열두 열매…신앙인이 추구하는 ‘진복팔단’과 연결
깊은 내면의 자유·평화 경험하며…분열된 세상 속 복음 살아낼 수 있어
영혼을 완성하는 성령칠은과 참된 사랑의 질서
성령의 일곱 가지 선물은 인간의 인식 능력과 욕구 능력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완성하여 하느님의 뜻을 따르도록 준비시킨다. 토마스는 이사야서 11장(2-3)에 따라, 사변 이성을 위해서는 통찰(깨달음, intellectus)과 지혜(슬기, sapientia)를, 실천 이성을 위해서는 의견(깨우침, consilium)과 지식(앎, scientia)을, 그리고 욕구 능력을 위해서는 용기(굳셈, fortitudo), 효경(공경, pietas), 경외(두려워함, timor)를 배치한다.(I-II,68,4)
특히 지혜의 선물에 대해 그는 “지혜는 우리를 하느님과 결합시키며, 마치 맛보는 것처럼 하느님을 아는 일종의 인식을 준다”고 설명하며, 이것이 단순한 지식을 넘어선 하느님과의 친밀한 일치임을 밝힌다.(II-II,45,2) 통찰은 신앙의 진리를 깊이 꿰뚫고, 의견은 실천적 분별을 돕는다. 굳셈은 두려움 속에서도 선을 지속하게 하고, 효경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공경을 불러일으키며, 주님을 경외함은 피조물에 대한 불필요한 집착을 떨쳐 버린다.
이러한 선물들은 모두 참된 사랑(caritas)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지식과 통찰의 선물은 고통을 단순한 불행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빛 안에서 바라보게 하며, 용기의 선물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실제 고난의 시간을 견뎌내게 한다. 오랜 병간호와 같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그리스도교 신자가 평화를 유지하며 ‘참된 사랑을 배우는 학교’로 그 시간을 받아들이는 힘은 바로 이러한 성령의 선물들이 영혼 안에서 작용한 결과이다. 이처럼 성령의 은혜는 인간이 수행하면서도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는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
지금 여기에서 맛보는 하느님 나라의 열매와 행복
성령의 선물에 따라 행동할 때 인간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데, 토마스는 이를 “성령에 따라 행하는 행위들 가운데 특히 달콤한 기쁨을 동반하는 것들”로 정의한다.(I-II,70,1) 토마스는 성경(갈라 5,22-23; 묵시 22,2)을 토대로 (참)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온유, 성실, 신의, 절제(절도), 자제, 정결의 열두 열매를 열거한다.
열매는 단순히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덕행을 통해 얻게 되는 완성된 기쁨이며, 이미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맛보고 있음을 보여주는 표지이다.(I-II,70,2) 비록 궁극적인 완성은 내세에서 이루어지겠지만, 사랑, 기쁨, 평화와 같은 열매들은 신자가 여정 중에 경험하는 목적지의 안식과도 같다.
진복팔단 역시 미래에 대한 약속일뿐만 아니라 성령의 선물에 의해 형성된 행위가 ‘지금 여기서’ 시작되는 모습이다.(I-II,69,1) 토마스는 은총으로 시작되는 행복은 “완전한 사람들 안에 존재하는 참행복의 시초일 수도” 있다고 말하며, 현세의 삶 안에서도 지복직관의 시작 단계가 존재함을 분명히 한다.(I-II,69,2)
토마스는 성령의 선물과 열매를 하느님 나라의 행복이 우리 안에 어떻게 싹트는지 설명하는 열쇠로 본다. 따라서 그는 각 진복을 특정 선물과 연결 짓는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주님을 경외함의 선물로, 피조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하느님께 의지하는 태도이다. ‘온유한 사람들’은 굳셈의 선물로, 분노를 이기고 부드러운 강인함을 드러낸다. ‘자비로운 사람들’은 효경의 선물로,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며 돕는다.
가령 온라인 논쟁에서 상대를 적으로 보지 않고 형제자매로 대하며 온유함을 선택할 때, 그리스도인은 당장의 승리보다 더 깊은 내면의 자유와 평화를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이 바로 ‘공격보다는 자비를, 지배보다는 온유를 선택했을 때 맛보는 행복’이며, 분열된 세상 속에서 성령의 선물을 통해 우리가 살아낼 수 있는 구체적인 복음의 초대이다.
토마스의 성찰은 우리에게 묻는다. “오늘 나는 성령의 어느 선물을 통해 어떤 진복을 살아내고 있는가.” 이 물음은 일상을 하느님 나라가 드러날 수 있는 장소로 바꾼다. “성령님, 우리를 당신의 뜻대로 이끌어 주소서.”
글 _ 박승찬 엘리야(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