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며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난 줄만 알았던 그리스도께서는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이를 통해 우리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의 표징이 되어주셨다. 그래서 주님 부활 대축일은 전 세계 그리스도인, 나아가 세계시민 모두가 기뻐하는 기념일로 자리매김했다. 지구촌 이웃들은 어떻게 개성 있게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있을까. 세계의 다양한 언어·문화권 별 부활절 풍습을 알아본다.
■ 영어권 - 19세기 상류층 옷차림에서 유래…화려한 축제로 발전
필리핀에서는 주님 부활 대축일 새벽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가 재회하는 장면을 재현하는 ‘살루봉(Salubong, 타갈로그어로 만남)’ 행렬이 펼쳐진다. 텔레노벨라(Telenovela, 극적 분위기와 연출을 극대화한 필리핀·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이별과 재회의 격정적인 서사로 부활의 신비를 묵상하는 전통이다. 스페인의 ‘엘 엔쿠엔트로(El Encuentro, 스페인어로 만남)’ 행렬에서 유래했다.
남자들은 예수상을, 여자들은 성모상을 들고 각기 다른 지점에서 출발해 서로를 향해 행진한다. 성모상에는 아들을 떠나보낸 어머니의 슬픔을 상징하는 검은 베일이 씌워져 있다. 두 행렬이 마주치면, 천사 분장을 한 어린아이가 공중에서 내려와 성모상의 베일을 걷어낸다. 주님을 잃은 슬픔을 거두고 그분을 되찾은 기쁨을 맞이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어 환호 속에서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가 시작된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서는 화려하게 장식한 부활절 모자(Easter Bonnet)를 쓰거나 개성 있는 옷차림으로 축제와 퍼레이드를 즐긴다. 1870년대 미국 뉴욕 상류층이 부활 미사 혹은 예배를 마친 뒤 거리를 걸으며 화려한 봄옷과 모자를 뽐내던 데서 유래한 풍습이다.
오늘날 퍼레이드는 소외된 이들의 영웅이었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대축일의 의미를 따라, 상류층의 전유물을 넘어 종교·인종·나이·성별 상관없이 모든 이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유로운 축제로 발전했다. 중심지는 여전히 뉴욕 맨해튼 5번가와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 앞이다. 19세기의 고풍스러운 옷차림부터 방금 룩북(look book)에서 튀어나온 듯한 고급 맞춤 여성복까지, 길거리를 런웨이 삼은 인파로 넘쳐난다.
■ 프랑스어권 - 종 모양 초콜릿·초대형 오믈렛 만들기 등 눈길
‘달걀 사냥(la Chasse aux Œufs)’은 곳곳에 어른들이 숨겨둔 알록달록하게 꾸민 달걀, 초콜릿 등이 들어있는 장난감 달걀을 아이들이 찾아내는 놀이다. 유럽 전역에서 볼 수 있는 풍습이지만, 프랑스·벨기에식은 프랑스어권만의 개성이 깃들어 눈길을 끈다.
게르만 문화의 영향으로 ‘부활절 토끼(Easter Bunny)’가 아이들에게 달걀과 간식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유럽의 다른 지역과 달리, 프랑스어권에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부활절 종(les Cloches de P?ques)’이 달걀과 간식을 떨어뜨린다고 믿는다. 사순 시기 동안 울리지 않아 이탈리아 로마로 날아갔던 성당의 종들이 대축일 아침 프랑스로 돌아오며, 하늘에서 기쁨의 선물을 떨어뜨린다는 전설이다. 그래서 부활 초콜릿도 토끼 모양보다 종 모양이 일반적이다.
프랑스 남서부 베시에르(Bessi?re)에서는 1973년부터 매년 주님 부활 대축일마다 지름 4m를 넘는 거대한 오믈렛을 만들어 나눠 먹는다. 달걀만 1만5000개 이상, 약 6000인분에 달하며, 행사에 오는 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부활의 상징인 달걀을 단순히 먹는 것을 넘어, 모두가 함께 목표를 이루고, 예수의 가르침처럼 조건 없이 사랑을 나누는 정신이 깃든 풍습이다.
프랑스어를 쓰는 캐나다 퀘벡에서는 대축일 당일 동트기 전 흐르는 시냇물이나 강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오랜 전통이 있다. 봄의 생기와 부활의 은총이 자연에 미쳐 특별한 정화의 힘을 지닌다는 믿음으로, 17~18세기 프랑스 북서부에서 이주한 초기 정착민들이 전한 풍습이다. 이렇게 떠온 물을 부활절 물(lEau de P?ques)이라고 부르는데, 물을 뜨러 갈 때부터 돌아올 때까지 반드시 침묵을 유지해야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퀘벡을 흐르는 세인트로렌스강 연안 시골 마을에서는 지금도 이 풍습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 스페인·포르투갈어권 - 악을 정화하는 의미로 유다 형상 만들어 불에 태워
스페인·포르투갈,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성토요일 밤이나 주님 부활 대축일에 ‘유다 태우기(Quema·Malha??o de Judas)’를 한다. 짚이나 헝겊으로 유다 이스카리옷 형상의 인형을 만들어 태우는 풍습으로, 악을 정화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인형 안에 폭죽을 넣어 화려하게 터뜨리거나, 논란이 되는 정치인이나 악인을 유다로 형상화해 태우거나 매질하기도 하는 등, 풍자와 해학이 어우러진 축제 분위기가 특징이다.
멕시코에서는 달걀껍데기로 만든 장식품 ‘카스카로네스(Cascarones, 스페인어로 달걀껍데기)’를 가족과 친구의 머리에 깨뜨리는 장난스러운 풍습이 있다. 카스카로네스는 달걀 윗부분에 구멍을 내 속을 비우고, 그 안에 콘페티(Confetti, 색종이 조각)를 채운 뒤 겉을 화려하게 색칠해 만든다. 멕시코 사람들은 카스카로네스가 깨지면서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는다. 짓궂은 장난을 주고받으면서도 그 안에 애정을 담아 서로를 축복하는, 부활의 기쁨을 색다르게 나누는 전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