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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공동의 집’ 지구를 위해] (17) 석호의 법인격과 애니미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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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스페인 의회는 마르 메노르(‘작은 바다’라는 뜻)라는 석호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에콰도르나 뉴질랜드처럼 자연과의 영적·관계적 세계관이 제도에 반영된 나라가 아니라, 근대 시민법체계를 가진 유럽 국가에서 그러한 법률이 제정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스페인 보수정당 소속 의원들은 법인격 개념을 인간이 아닌 자연물에까지 확장하는 것은 인격 개념을 왜곡시켜 인간에게 고유한 존엄성을 훼손한다며 위헌 심판을 청구하였다.


스페인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갈렸다. 재판관 다수는 “존엄한 삶은 적절한 자연환경에서만 가능하다”며, 마르 메노르의 법인격 인정이 오히려 인간존엄성을 강화한다고 한다. 인간존엄성은 인간을 모든 자연적 실재의 중심에 두는 개념이 아니라, 인간이 환경과 공생하도록 요청하는 개념이라고 보았다.


반면 5명의 재판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적절한 환경은 인간의 인격 발달과 삶의 질을 위한 조건일 뿐 환경보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고, “자연보호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인간과 자연을 동일한 가치론적 평면에 놓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반대의견은 자연(물)의 법인격이라는 발상이 에콰도르나 볼리비아와 같은 나라들의 (특히 원주민의) 우주론이나 세계관에 뿌리를 둔 것으로, 유럽은 이미 범신론적·애니미즘적 세계 이해를 넘어 합리주의적·과학적 문화로 발전해 왔다고 하였다.


나는 여기서 에콰도르가 단순히 “자연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자연의 권리를 인정해 준 것으로 보는 듯한 반대의견의 시각에 대해 비판하고자 한다. 


먼저 에콰도르의 자연의 권리법제는 원주민 세계관만의 산물은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에는 원주민적 사유의 영향뿐 아니라 법학에서의 자연물의 권리에 관한 논의, 지구를 단일한 자기조절시스템으로 보는 지구시스템과학의 이해 및 대지윤리나 지구헌장과 같은 윤리적·종교적 흐름이 결합돼 있다. 


한편 반대의견은 애니미즘을 열등한 원시적 사고로 이해하는 듯하다. 그런데 서구의 자연-문화 이분법을 넘어 세계의 다양한 존재론적 방식을 재조명한 프랑스 인류학자 필립 데스콜라에 따르면, 애니미즘은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다른 몸을 가졌더라도 일정한 내면성(의식, 영혼 등)을 공유한다고 보는 존재론적 인식 체계로,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이 비인간과 맺는 관계 양식이라고 한다.


오늘날 기후·생태위기 시대에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위계를 절대화하기보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로 공생의 질서 속에 놓여 있음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고유성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은 인간 우월성이나 예외성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아니라, 더 큰 윤리적·법적 책임을 요구하는 근거가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자연과의 공생을 강조하는 에콰도르의 세계관은 극복돼야 할 전근대적 믿음 체계가 아니라, 오히려 오늘날 진지한 존중을 받아야 할 사유 양식이라 할 것이다.



글 _ 박태현 요셉 다미아노(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지구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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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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