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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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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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모습보다 먼저 제자들에게 당신의 상처를 보여주십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부터 31절에는 이 사실을 두 번이나 반복합니다. 주님은 “오시어”(요한 20,19.26) 제자들 가운데 서시고,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 주십니다.(요한 20,20.27 참조) 이는 부활이 십자가를 지워 버린 사건이 아니라, 상처를 지닌 사랑의 현존임을 드러냅니다. 제자들의 두려움과 토마스의 의심은 바로 이 상처 앞에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못 자국과 창에 찔린 옆구리, 곧 십자가의 상처는 실패의 흔적이 아니라 부활의 진실을 드러내는 표징입니다. 상처를 통해 제자들은 부활하신 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바로 그분임을 알아보고 두려움은 기쁨으로 바뀝니다. 또한 이 상처는 토마스의 의심을 믿음으로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날 저녁, 두려움 속에 문을 잠그고 있던 제자들에게 오십니다. 그리고 여드레 뒤, 의심 가운데 머물러 있던 토마스를 위해 다시 오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같은 장소에 두 번 오셨다는 사실은, 부활이 과거의 한 사건으로 끝나지 않음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버려두고 떠나신 분이 아니라 희망을 주시기 위해 다시 오시는 분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들, 의심하는 이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문이 닫혀있어도 그들 가운데로 들어오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그렇게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오심은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청하지도, 맞이할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지만, 주님은 그들을 먼저 찾아오십니다. 주님의 사랑은 인간의 준비와 자격을 앞섭니다. 또한 제자들이 “문을 잠가 놓고 있는데도” 오셨다는 사실은, 어떤 장벽도 막을 수 없는 주님의 초월적인 현존을 드러냅니다. 더 나아가 주님은 제자들 “가운데 서시어” 부활 신앙이 개인의 체험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의 신앙이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토마스의 의심마저 껴안으시며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주님의 인내와 자비를 보여주십니다. 오늘 하느님의 자비 주일은 바로 이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주님은 토마스에게 왜 당신의 상처를 만져보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토마스를 시험하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더욱이 그의 불신앙을 꾸짖는 말씀도 아니며, 오히려 그의 의심을 당신의 상처 안으로 초대하시는 자비입니다. 예수님의 상처는 세상을 향해 열린 하느님 자비의 문입니다. 토마스에게 주님의 상처는 실패와 좌절이 남긴 고통의 자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믿음이 태어나게 하십니다.


마침내 토마스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이라고 말합니다. 이 고백은 요한복음 전체가 이끌어 온 신앙의 정점이며 부활 신앙의 가장 완전한 언어입니다. 토마스는 더 이상 증거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가 상처를 만졌는지조차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예수님은 더 이상 ‘그분’이 아니라 ‘나의 주님’이 되십니다.


사도 베드로가 말하듯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어”(1베드 1,3)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산 희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이 새로 태어남은 상처 없는 삶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부활 신앙은 의심과 상처를 안고서도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하는 용기입니다. 예수님은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본 적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하고,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으며(1베드 1,8 참조) 그분의 자비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증거를 요구하며 두려움과 의심 속에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그런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닫힌 마음의 문을 넘어 우리에게 오십니다.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맞아 우리는 예수님의 상처가 오늘도 고통받는 이들의 상처 안에 있음을 기억합니다. 그들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자비가 우리를 부활의 믿음으로 이끕니다.



글 _ 전봉순 그레고리아 수녀(예수 성심 전교 수녀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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