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살던 마을은 군부의 공습·방화로 잿더미가 됐고, 처남은 불길을 피하다 다리가 부러졌어요. 심장 질환 치료가 시급한 장인어른은 약도 못 구한 채 피난 다니고 계십니다. 군부는 제가 한국에서 시민군을 지지하는 걸 알고 본가를 급습해 형을 납치·고문했어요. 청년들은 강제 연행해 총알받이로 내몰고, 가족 등록부에 없는 사람은 시민군으로 몰아 박해하고 있습니다.”
3월 28일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별사랑이주민센터 수녀들의 이주민·난민 가정 방문에 동행하며 경기도 부천의 한 주택에서 만난 미얀마 난민 쿠알 응아이 망(37) 씨가 들려준 미얀마 내전의 참상이다.
수녀들 도움으로 난민 신청 등 할 수 있는 모든 싸움을 이어가는 부부의 품에는 4살과 15개월 된 두 아들이, 고향에서 일어나는 학살과 가족 앞에 드리운 죽음을 전혀 모르는 얼굴로 안겨 있었다. 미얀마 내전은 인도차이나의 먼 땅에서 6년째 진행 중인 참상을 넘어, 바로 우리 곁에 숨어 지내며,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숨을 쉬는 비극이었다.
어떤 간절한 기도만이 힘이 될까. 개신교 목회자인 쿠알 씨는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치 독일에 저항하던 끝에 감옥에서 순교한 그는 「옥중서간」에서 “오직 고통받는 신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고 남겼다.
빛이 아니라 오히려 어둠 속에서 완결된 그 믿음은 이데올로기화한 신에 대한 맹신도, 죄책감 따위가 동기가 된 종교적 집착도 아니었다. 똑같이 고통받는 인간과 하느님이 서로의 짓무른 상처를 닦고, 구원을 주고 받는 관계를 넘어, 경계 없이 동화된 사랑이었다. 그 순간, 부천시 어느 주택에서 네 사람의 모습으로 내 앞에 숨 쉬고 계신 하느님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