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지난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 중 수난 복음을 들으며 제 마음은 여느 해처럼 2000여 년 전 로마 제국이 지배하던 유다 지방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한 군중이 되어 총독 본시오 빌라도의 관저 앞 광장에 서 있었습니다. 저 멀리 빌라도 곁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빌라도는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예수를 어떻게 하기를 바라느냐?”
우리는 외쳐야 했습니다.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말입니다. 혹시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싶어 더 크게 외쳐야 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십자가에 못 박으……” 하고 입을 떼려는 순간,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아마 저만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요. 어찌 보면 미사 전례 안의 한 장면일 뿐일 수도 있지만, 그 말은 차마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흉악범 바라빠 대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거듭 소리쳐야 했습니다.
간신히 눈물은 삼켰지만,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무거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왜 하필 우리가 군중의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 원망스러운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 눈물과 무거움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조용히 묵상을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 어리석고 완고한 군중의 모습 안에 저 자신도 들어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생각이 이에 미치자, 마음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 죄마저 외면하지 않으시고, 회개의 마음으로 봉헌하는 작은 기도까지 받아 주시는 분이심을 다시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곧 평화를 되찾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제가 아버지의 도우심 없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죄짓는 일뿐임을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저에게 한없는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는 당신 성심에 찬미를 드립니다.”
얼마 전 읽은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의 일기」에서 배운 기도도 함께 바쳤습니다. “하느님, 당신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보시어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
부활하신 주님을 맞이하며 제가 다시 확인한 진리는 분명합니다. 우리 죄를 짊어지고 수난하셨다가 되살아나신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당신 외아들의 수난을 보시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성가 <하느님 당신은 나의 모든 것>을 되뇌며 다시 주님께 마음을 봉헌합니다. “죄 많은 인간이 무엇이기에 오 주여 이토록 돌보나이까.” 아멘.
글 _ 주현웅 요한 세례자(수원교구 화성 병점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