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면 제주는 참 바쁘다. 봄 여행도 봄 여행이지만 부활 시기 많은 본당에서 ‘엠마오’로 제주를 방문하신다.
성지를 돌아보기도 하고, 봄꽃 가득한 곳을 찾기도 하고, 맛있고 풍경 좋은 카페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가끔은 “제주에 살고 계시니 좋으시겠어요?” 하며 뭐가 좋은지 묻는 분들도 있다.
이곳에 머물면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좋은 점을 적어본다면, 첫 번째로는 자연이다. 매일 아침 보는 나무와 하늘이 같은 모습이 아니라 날마다 날마다 새로운 색으로 변한다. 그래서 난 창조주를 미술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내가 머무는 서귀포의 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에서 보는 한라산은 하루하루가 다르고, 바쁜 일정을 마무리하고 차에서 내려 바라보는 밤하늘은 늘 맑고 초롱초롱한 별들이 수고했다고 웃어준다.
두 번째로는 겉모습으로 판단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흙먼지 가득한 바지를 입고 다니더라도, 아주 오래된 차를 몰고 다닌다 하더라도 이곳 제주에서의 편견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사실 그런 분 대다수는 넓은 감귤밭이나 땅을 갖고 있다.
세 번째로는 남의 물건을 탐하지 않는다. 혼숨에는 문이 없다. 그리고 옆집 사람들의 모습이 보일 정도로 담이 낮다. 가끔 정원을 정리하느라 장비를 마당에 아무렇게나 방치하는 상황이 되어도, 차량에 물건을 실어 놓고 문을 잠그지 않더라도 물건을 집어 가거나 훔쳐 가는 일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무관심한 것도 아니다. 표현을 안 할 뿐 관심도 많다.
물론 가끔은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도 많지만 이곳에 있다가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폐쇄적인 관계가 힘들 때가 있고, 오늘 말과 내일 말이 다르기도 해서 당황하기도 하고, 운전 문화도 달라 가끔 교통사고의 위험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처음엔 “내가 뭘 잘못했나? 저 사람 왜 저럴까” 의심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
4월이 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4·3.’ 아직도 정확한 용어 정리도 되어 있지 못할 만큼 아픈 단어다. 제주에 대해 알아가다 보니, 조선시대 200년이 넘도록 제주 사람은 육지에 가지 못하게 한 ‘출륙 금지령’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이처럼 아프고 힘든 시간이 많은 곳이다 보니 사람을 믿지 못하고, 웃음이 사라진 삶을 사는 분들도 있다.
그런 제주를 주님께서는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서울 할망’이라고도 불리는 정난주(마리아) 선조는 대정현에서 관비(官婢)로 유배 생활을 했지만 참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었고, 차귀도라는 곳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조난을 당하는 바람에 첫 미사를 봉헌하게 된 은총의 장소가 됐다. 또 제주교구 유일한 복자 김기량(펠릭스 베드로)을 통해 제주도에 신앙의 씨앗을 맺게 하셨으니, 세상은 보잘것없고 가난한 곳을 외면할지라도 주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며 놀라운 신비를 보여 주신 곳이 제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 _ 박우곤 알렉시우스(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지기, 안드레아여행사 성지순례 프로그램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