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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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의 마지막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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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재개발을 앞둔 서울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에서 큰 화재가 났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지만, 200여 주민들이 한순간에 집을 잃었다. 23년째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샬트르 성 바오로회 이정숙(루치아) 수녀도 온몸이 무너져 내렸다. 아이들의 공부방, 작고 초라한 방 한 칸이 전부인 수녀원도 흔적 하나 없이 사라졌다. 그 세월을 아이들을 돌보며 주민들과 밥을 나눴던 곳이다. 하루 250여 명 분의 식사를 준비했는데, 주방에 냉장고만 8대가 있었다. 그 누구도 관심 두지 않던 이들을 위해 함께 일했던 분들의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수녀님의 헌신도 각별했다.


새벽 5시, 어느 빈집에서 시작된 불길이 솜과 비닐, 합판으로 지어진 판잣집들을 집어삼키는 광경을 보며 수녀님은 ‘그리스도의 몸’이 불타는 것 같다고 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나 지금이나, 이 마을은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었다. 아이들이 바글거리며 웃고 떠들던 어린이집과 노인들이 따뜻한 국 한 그릇에 잠시 시름을 잊던 공간이 화염에 싸여 사라지는 모습은 한 편의 거대한 수난곡이었다.


세상 끝으로 밀려나 금방이라도 사그라져 버릴 것 같았던 주민들과 함께 수녀님은 기쁨과 행복을 나누고 싶었다. 폭력과 도박, 술에 절어있는 이들에게 건네는 근심 가득한 말들은, 막상 돌멩이가 되어 다시 날아왔다. 이럴 때 수녀님을 견디게 한 힘 가운데 하나가 공동체의 전례였다. 


올해 부활 대축일 미사가 구룡마을 공동체에서 드리는 마지막 미사다. 부활 전에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이 마지막 미사가 실제로 어떨지는 알 수 없다. 짐작할 수 있는 하나는, 말 그대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파스카’의 기억이 될 것은 분명하다. 죽음 같은 현실을 생명의 활력으로 바꾸는 사랑의 역동 없이 여기서 견디기는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사로 대표되는 전례는 사랑을 배우고, 연습하며, 살아가는 특권적인 장소다. 세상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보다 더 절박하고 긴급하며, 필요한 일은 없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 이 사랑의 요구에 직면한다. 전례 공간은 우리가 사랑하기 위해 더 나은 길을 찾고, 방향을 다시 가늠하는 곳이다. 전례의 공간 안에서 온 세상은 도전받고 새롭게 질서 잡힌다. 이미 우리 삶 자체가 전례적이어서, 단지 성당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세계 속에서 완성된다. 그래서, 전례는 우리를 날마다 세상으로 보내는 환송식이다.


전례에 참여하며, 우리는 자신에 대한 걱정은 조금은 덜 하게 되고, 세상을 어떻게 잘 돌볼 수 있는지는 더 고민하게 된다. 전례는 아주 구체적이고 강력하다. 성체를 영할 때 우리는 어느 가난한 이웃이 점심은 먹었는지, 알렐루야를 노래하면서는 다른 형제자매들이 머물 지붕은 있는지 염려한다. 자비송을 부를 때는 가난한 이들을 돌보려는 우리 마음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고백한다. 이 모든 일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찬미하고 섬기는 방식이며, 우리의 삶을 재구성하는 사건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하느님을 사랑할 때,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가?”라고 묻는다.(10권 6장)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는, 우리가 실제로 무엇을 사랑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인간, 사물, 사건에 참여하며, 우애와 사랑을 통해 하느님을 사랑한다. 그러나 이들은 물리적 대상이 아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대상’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주어지는 ‘사랑의 사건’에 자신을 개방하는 일이다. 


조금만 주의 기울여 보면,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랑의 사건이 넘친다. 혐오의 언어가 난무하는 곳에 화해의 말을 건네고, 절망에 빠진 이웃에게 함께하자는 작은 손을 건네는 일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건너가도록’ 도울 때, 그곳이 바로 부활의 현장이다. 루치아 수녀는 신당동 오래된 동네, 광희문 순교성지가 감싸고 있는 골목 한구석에 무료 밥집 ‘달그락’을 열어 그 사랑을 이어간다.



글 _ 박상훈 알렉산데르 신부(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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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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