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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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동안 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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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지게 핀 봄꽃 속에서 부활절을 맞이합니다. 볕 좋은 곳의 개나리는 벌써 노랑에서 초록으로 넘어가려 하고 벚꽃도 활짝 피었습니다. 꽃을 연구하는 분의 말씀에 따르면 지난겨울이 예년보다 추웠기 때문에 올봄 벚꽃의 휴면 해제 시기가 빨라진 거라고 하네요. 겨울엔 겨울나무처럼 단단하게 안으로 응집하는 힘을 키우려 기도했는데, 봄이 되니 수줍게 피어나 어느 순간 화르르 주위를 밝히는 봄꽃이 되어 봅니다.


‘사는 동안 꽃처럼’은 아버지가 붓글씨 쓰시던 책상 위, 종이 뭉치 속에서 발견한 글귀입니다. 주로 한자로 붓글씨를 쓰셨기에 아버지 붓글씨 작품을 알아보려면 얇은 한문 지식으로 늘 더듬더듬 읽어야 했는데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사는 동안 꽃처럼’을 만났습니다. 아버지는 평소 엄격하고 단아한 서체를 즐겨 쓰셨는데 이 문구는 캘리그라피를 하듯 꽃처럼 날아가게 쓰셨네요. 서예대전에 출품할 목적으로 표구한 작품이 서재에 하나 걸려 있는 걸 제외하고는 아버지 쓰신 글씨는 이렇게 종이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하나 숨결처럼 쓰다듬어 봅니다.


‘사는 동안 꽃처럼’은 아버지가 처음 하신 말씀은 아니겠지만 아버지가 남기신 붓글씨 덕분에 이 봄 매일 새기며 생각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DMZ세계문학페스타’라는 행사에 참여해 여러 작가를 만났는데요. 팔레스타인의 작가 아흘람 브샤라트는 어렵게 여러 나라를 거쳐 한국에 왔습니다. 기적처럼 죽음을 건너온 사람이 환하게 꽃처럼 웃습니다.


한국으로 출발하기 며칠 전, 이웃의 가족이 명절에 입을 옷을 사러 가다가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의 총격에 살해되었다고 해요. 뉴스를 들어도 남의 일처럼 실감 나지 않던 이야기를 바로 앞에서 들으며, 도라산 전망대에서 가까운 북녘땅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절감합니다. 평화는 매일 한 걸음씩이라도 더 만들어 나가야 하는 일임을.


사는 동안 꽃처럼. 성경에서 꽃은 인간 존재의 덧없음과 하느님의 섭리를 드러내는 것으로 자주 비유되는데, 저는 마태오복음의 말씀을 자주 새깁니다.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마태 6,28) 솔로몬왕의 영광도 이 꽃보다 못하다는 말씀은 그 자체로 온전한 존재의 충만함을 느끼라는 뜻이겠지요.


하나인 세상이 분열하고 나뉘어 서로 공격하면서 전쟁의 불안이 전 세계를 덮고 있는 이때, 평소 별생각 없이 쓰던 기름이, 원재료들이 모두 유한한 자원임을, 우리가 그동안 기적처럼 서로 돕고 나누며 이어왔음을 뒤늦게 실감합니다. 이 위태로운 세상에서 아무 불안 없이 환하게 피어 있는 꽃을 바라봅니다. 부는 바람에 소리 없이 떨어질 운명을 한탄하지 않고 피어 있는 꽃. 곧 사라질 영광이 이 찰나의 시간에 기입됩니다.


오늘은 그걸로 충분합니다. 각자의 고투로 바쁘고 힘들지만, 사는 동안 꽃처럼! 인간 존재의 아름다움과 슬픔, 하느님의 신비를 모두 간직한 꽃들이 세상을 밝히고 있는 오늘, 주님 부활하신 빛과 함께 흐르는 이 시간, 그대로 기쁘고 고맙습니다.



글 _ 정은귀 스테파니아(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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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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