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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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기, 다시 쓰는 가족] 정답을 넘어서 함께 머무르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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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다가 문득 멈출 때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좀 불편합니다.” 마음 한쪽이 조용히 저항합니다. 교회 안에서 질문을 꺼내면 종종 이런 말이 돌아옵니다. “그건 너무 나간 해석이야”, “괜히 분란 일으키지 마.” 어느새 그 말은 타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내 안의 목소리가 됩니다.


흔들림은 흔히 위험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믿음은 단단해야 하고, 신앙은 안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서를 천천히 읽어 보면, 예수님은 늘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십니다. 세리와 식탁에 앉으셨고, 안식일의 질서를 뒤흔드셨고, “누가 내 어머니이며 형제들이냐”(마르 3,33)고 물으셨습니다. 가족과 혈연, 권위의 경계까지 다시 묻게 하셨습니다. 복음은 위로이기 전에 먼저 불편함이었습니다. 익숙한 자리를 흔들어 놓는 말씀이었습니다.


불편함을 믿음의 위기로 오해하곤 하지만, 실은 그 반대일지도 모릅니다. 아무 질문도 남지 않고, 아무 저항도 느껴지지 않을 때, 그때야말로 신앙이 멈춘 것은 아닐지요. 불편함은 믿음이 살아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내가 붙들고 있던 언어와 자리를 다시 보게 만드는 움직임입니다.


신앙의 여정뿐 아니라 공부 또한 그러합니다. 공부는 나를 옳게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다시 묻게 하는 과정입니다. 내가 당연하게 여겨 온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다른 자리에서 바라보는 연습입니다. 불편함을 피하지 않는 공부, 그것이 예수님의 공부법입니다.


가족 안에서도 불편한 순간이 찾아옵니다. 아이의 선택이 부모의 기대와 어긋날 때, 배우자가 이전과 다른 길을 말할 때, 부모 세대와의 대화가 자꾸만 충돌로 끝날 때. 그때 우리는 일단 설득하려 하고, 보다 강하게 통제하려 합니다. 불편함을 서둘러 정리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가족이 할 수 있는 공부는 다른 길일지도 모릅니다.


견디며 곁에 머무르는 일. 쉽게 답을 내지 않고, 관계를 서둘러 끊지 않는 일.


불편함은 관계의 결렬이 아닌,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완전히 무관심해졌다면 우리는 아프지도 않을 것입니다. 아픔이 있다는 것은 아직 관계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불편함이 없는 상태를 더 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복음이 보여 주는 평화는 갈등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서로 다른 마음이 함께 머무를 수 있는 자리입니다. 불편함을 밀어내지 않고 그 안에 함께 머무를 수 있을 때, 관계는 조금씩 깊어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오해를 단번에 고치지 않으셨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남기시고, 시간이 흐르도록 기다리셨습니다. 제자들이 스스로 질문을 품도록, 그 질문이 삶이 되도록 기다리셨습니다.


때로는 정답이 필요한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이미 주어진 답을 따라가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불편함을 듣고 그 안에 함께 머무르며 우리가 걸어갈 길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식탁은 어떠한 자리입니까. 정답만을 점검하는 자리입니까, 아니면 서로의 불편함을 드러내고 함께 머무르며 길을 찾아가는 자리입니까.



글 _ 유형선 아우구스티노 (가족인문학연구소 공동운영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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