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내부로 들어서면, 돔 아래 작은 경당 하나가 마치 특별한 보석처럼, 동시에 겸손한 여인처럼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바로 포르치운콜라(Porziuncola) 경당입니다.
이 경당은 프란치스코회의 시작을 알리는 장소입니다. 프란치스코와 초기 형제들이 1209년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의 수도회 인준 이후 공식적인 가난의 수도 생활을 시작한 곳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성모님과 함께 발현하시어 회개한 이들에게 ‘완전한 용서’, 곧 전대사를 약속하신 거룩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 경당은 프란치스코와 잘 어울리는 이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포르치운콜라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어 포르치오네(porzione, 작은 몫)와 아그리콜라(agricola, 농사 또는 농부)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즉 ‘작은 몫의 땅’, 다시 말해 매우 작은 장소를 의미합니다. 6세기경부터 존재했던 이 경당은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지역 수바시오 산(Monte Subasio)에 위치한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 소유였습니다. 이곳은 수도원 농장에서 일하던 수사들과 사람들이 기도 시간에 사용하던 장소였습니다.
프란치스코와 그의 형제들이 이곳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하려 하자,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은 이를 무상으로 내어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인은 이 작은 경당마저 소유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해마다 한 번 물고기 한 바구니를 바치며 이곳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경당 전면 벽에는 세 차례에 걸쳐 복원된 벽화가 있었으나, 현재 작품은 1829년 독일 화가 요한 프리드리히 오버벡(Johann Friedrich Overbeck)이 다시 그린 것입니다. 이 벽화는 성모님의 전구로 포르치운콜라의 완전한 용서를 예수님께 받는 프란치스코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포르치운콜라는 1206년 프란치스코가 성 다미아노 성당과 아시시 지역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을 수리한 뒤, 1208년 세 번째로 수리한 경당입니다. 그래서 경당 내부의 벽돌에는 성인의 손길을 느끼고자 했던 많은 순례자의 손길이 더해졌고, 그 거친 표면은 사라져 하느님의 사랑처럼 부드럽게 남아 있습니다.
1209년 마티아 사도 축일에 들은 복음 말씀(루카 9,1-6 참조)으로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프란치스코는 설교를 시작했고, 더 많은 형제를 받아들이며 세상 곳곳에 파견했습니다. 그리고 형제들은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돗자리 총회를 통해 자신들이 한 일들을 나누었습니다. 포르치운콜라는 프란치스코 형제들에게 영적인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1216년 프란치스코는 이곳 인근에서 장미의 기적을 체험한 뒤, 포르치운콜라 경당에서 기도 중 환시를 통해 예수님과 성모님을 뵙고, 성모님을 통해 이곳을 찾는 이들을 위한 전대사를 청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의 전구를 받아들여 그 청을 허락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예수님으로부터 약속받은 이 전대사는 그전까지 교회 안에서 시행되던 전대사와는 크게 달랐습니다. 그 당시 전대사가 일정한 조건과 대가를 요구했다면, 그것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조건적이고 금전적 대가가 필요한 전대사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 예수님께, 죄를 회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전대사를 청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아시시의 용서’는 은총이라는 말의 뜻처럼, 하느님께서 모든 이에게 주시는 아무런 대가 없는 선물입니다.
여기서 프란치스코의 위대함이 나타납니다. 정확히 300년 후인 1517년 마르틴 루터도 프란치스코처럼 돈을 치러야 하는 교회의 전대사를 반박했고 교회를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교회는 분열이라는 두 갈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나 마르틴 루터 모두 교회의 세속화를 경고하며 개혁을 외쳤습니다.
하지만 성인은 사람의 개혁 즉 ‘회개’를 외쳤고, 마르틴 루터는 교회의 개혁 즉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대가로 이루어지는 전대사를 둘 다 배격했지만, 프란치스코는 전대사가 주님께서 교회를 통해 주시는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마르틴 루터는 교회가 만들어낸 장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로 인해 한 사람은 교회를 어머니라고 생각하여 순명하며, 가난이 하느님의 벌이 아니라 ‘하느님의 본성인 사랑을 찾는 최고의 선’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하느님 없는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에 대한 불만으로, 하느님을 가르고 사람을 가르는 일을 벌였습니다. 그러기에 마르틴 루터의 개혁은 고쳐 세운 것이 아니라 ‘분열’이었습니다. 진정한 종교개혁이 무엇이고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프란치스코는 이곳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