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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빚은 신앙] 장애를 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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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古城)에 뜨는 달.’ 


흥망성쇠로 얼룩지고, 영욕의 세월 속에 허물어져 잊힌 성채(城砦)를 으스럼히 밝히며 내려다보고 있을 둥근 달의 낭만적인 모습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사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모든 성곽은 말끔히 개축되어 허물어진 성체는 없다. 그럼에도 고성에 뜨는 달의 꿈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해 정월 대보름날 밤 남한산성 야간 촬영에 단독으로 나섰다. 이날 남한산성에선 민속놀이와 쥐불놀이 행사도 있었던 터라 야간 촬영 소재가 추가되었으나 쥐불놀이는 산불 위험이 있다고 취소되었다. 미리 정해둔 성곽으로 올라갔지만 이번에는 여기저기 대형 조명등이 밝게 켜져 있어 촬영할 수 없었다. 몇 년 동안 그리던 낭만적인 고성에 뜨는 달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장비를 거두고 철수하려던 참이었다. 마침 그곳에 와 있던 가까운 사진 동호인의 권유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그를 따라 높낮이가 고르지 않은 돌계단을 오르던 순간,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멘 채 그만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잠시 정신을 잃었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통증이 너무 심해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꽁꽁 언 땅은 내 체온에 녹아 등 아래 옷을 젖게 했다.


곧바로 119에 구조를 요청했다. 한밤중 산길로 구급차가 올라왔고, 나는 들것에 실려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골절 수술이 어렵다고 해 밤 11시가 넘은 시각, 다시 서울의 한 종합병원으로 이송됐다.


응급실 대기 침대에 누운 채 나는 통증에 신음하며 밤을 지새웠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고관절과 대퇴부 등 두 곳의 골절이 확인됐다. 돌계단에서 넘어질 때 카메라 가방이 완충 역할을 해준 덕분에, 다행히 머리는 다치지 않았다.


다섯 시간에 걸친 대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이후 1년이 넘는 회복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결국 회복할 수 없는 보행장애를 안게 됐다. 내 나이 여든셋 때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카메라를 멨고, 국내외를 오가며 출사를 이어갔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더 흘렀다. 이제 전처럼 모험적인 사진 촬영은 할 수 없지만 내 몸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카메라 촬영을 한다. 이른 아침엔 아파트 3층 방 창문을 열고 동녘 하늘에서 눈부시게 빛나며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며 생명의 빛을 받는다. 


해 질 무렵 서쪽 하늘이 붉은 노을로 물들 때면, 그 아름다움이 무한한 감동과 기쁨으로 온몸에 전해진다. 나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창 너머 먼 산이 바라다보이는 베란다 화단에서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피고 지는 꽃들을 찍고, 겨울이면 하얀 설경도 담는다.


피사체는 늘 비슷해 보여도, 사진 속에 담긴 모습은 언제나 새로운 감동을 안겨 준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골라 인터넷을 통해 다른 이들과 감동을 나누는 시간 또한 내게는 큰 행복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글 _ 김영덕 요한 세례자(수원교구 사진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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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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