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4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말씀묵상] 부활 제3주일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기도 열심히 하시고요, 미사에도 빠지지 마세요. 그래야 주님과 함께 지금을 잘 살 수 있습니다.” 


“저도 잘 알아요. 그런데 지금은 여유가 없어요.”


지금 삶이 너무 힘들어서 오랜만에 성당 나오셨다는 분과의 대화입니다. 사실 이렇게 말씀하시면 답이 없습니다. 지금 병에 걸리셨기 때문입니다. 이 병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이 병에 걸리신 분이 참 많습니다. 바로 ‘그런데 병’입니다. 계속 ‘그런데’를 외치게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병입니다. 이 ‘그런데 병’은 삶 안에서도 이렇게 이어집니다.


“이 책 읽어 보세요. 정말 좋아요.”, “그런데 책 읽을 시간이 없어요.”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낯을 많이 가려요.”


“운동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너무 바빠요.”


“많이 웃어야 해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요.”, “그런데 웃을 일이 없잖아요.”


‘그런데 병’은 변화를 거부합니다. 따라서 ‘그런데’ 대신 ‘어떻게’를 많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그런데 병’을 앓고 있는 제자들을 봅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뒤로하고 엠마오로 ‘예순 스타디온’(약 11km)이 넘는 씁쓸한 도피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이 가려져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잘못된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할 정치적 메시아로 기대했지만, 십자가 죽음으로 그 기대가 무너진 것입니다. 그러나 몇몇 여자가 전한 부활의 소식을 듣습니다. 하지만 계속 절망 속에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데 돌아가셨잖아요”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통해 당신의 십자가 수난이 실패가 아니라 영광으로 들어가기 위한 하느님의 필연적인 계획임을 깨우쳐 주십니다. 이 주님의 말씀으로, 차갑게 식었던 제자들의 마음은 다시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병’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미사 때, 말씀의 전례로 뜨거워지지 않습니까?


날이 저물어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은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 되시어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떼어 나누어” 주십니다.(루카 24,30 참조) 최후의 만찬과 동일한 이 행위 안에서 마침내 제자들의 영적인 눈이 열려 주님을 알아봅니다. 이제 ‘그런데 병’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찾게 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날이 저물어 어둡고 위험한 밤길임에도 즉시 일어나 돌아간 것입니다. 절망 안에서 엠마오로 도망갔던 제자들이 마음을 바꿔 이제 기쁨의 증거자가 되었습니다.


제1독서를 보면,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해주셨던 ‘성경 풀이’를 베드로 사도가 예루살렘 군중들에게 그대로 재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관자이시기에 결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 없었던 것”(사도 2,24 참조)이라고 완벽하게 논증합니다.


제2독서는 엠마오의 제자들이 가졌던 현세적 해방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진정한 영적 해방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흠 없고 티 없는 어린양, 즉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를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1베드 1,19 참조)


우리도 주님께 자기 삶의 고통을 없애주고 현세적인 축복만을 내려달라는 ‘빗나간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자기에게 맞지 않는다면서 ‘그런데’만을 외치면서 함께 걷고 계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계속 ‘어떻게’를 말하고 생각하면서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의 눈이 열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엠마오의 제자들이 빵을 떼어 나눠주실 때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봤던 것처럼, 미사를 통해 말씀을 듣고 마음이 타오르며 영성체로 눈이 열리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데 병’에 걸려서 엠마오로 도망가서는 안 됩니다. 이제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 나의 이웃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셨다”(루카 24,34 참조)라며 자기 삶으로 주님의 기쁜 소식을 증언해야 합니다.



글 _ 조명연 마태오 신부(인천교구 성 김대건본당 주임, 인천가톨릭대학교 카펠라관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6-04-14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4. 14

묵시 3장 20절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